안판석 감독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사진=텐아시아DB
안판석 감독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사진=텐아시아DB
40년간 한국 드라마사를 이끌어 온 안판석 감독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 투병 끝에 전해진 안타까운 별세 소식에 방송계와 시청자들의 깊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섬세한 연출력으로 '안판석표 드라마'라는 장르를 구축해 온 그의 발자취를 짚어봤다.

1987년 MBC PD로 연출 생활을 시작한 안판석 감독은 수십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작은 2007년 방송된 MBC '하얀거탑'이다. 일본 원작을 뛰어넘는 촘촘한 연출과 권력 및 욕망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최고 시청률 20.8%라는 신화를 썼다. 단편적인 선악 구도를 넘어 리얼리즘 정치·메디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얀거탑'(왼), '밀회' 포스터./사진제공=MBC, JTBC
'하얀거탑'(왼), '밀회' 포스터./사진제공=MBC, JTBC
안 감독의 장기는 정통 사회극에만 머물지 않았다. JTBC '아내의 자격'(2012)과 '밀회'(2014)를 통해 격조 높은 파격 멜로와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꼬집는 풍자극도 완성해 냈다.

안 감독의 연출 미학을 상징하는 시그니처는 '음악'과 '호흡'이다. 장면을 자르지 않고 길게 끌고 가는 롱테이크 연출 위에 특정 OST나 올드 팝송, 클래식 음악을 끊지 않고 유독 길게 통째로 깔아두는 기법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대사 없이도 음악과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감정선을 전달하며 '안판석표 멜로'의 짙은 여운을 완성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왼)', '봄밤' 포스터./사진제공=JTBC, M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왼)', '봄밤' 포스터./사진제공=JTBC, MBC
원석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도 안판석 감독이 남긴 큰 장기였다. 2018년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연출 당시, 안 감독은 짧은 영상 클립 몇 개만 보고 배우 정해인의 잠재력을 간파해 단숨에 남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신예에 가까웠던 정해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주연급 톱스타로 도약했고, 이어 안 감독의 차기작 MBC '봄밤'(2019)까지 연달아 호흡을 맞추며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안판석 사단'의 존재감도 뚜렷했다. 길해연, 오만석, 서정연, 장소연, 주민경, 윤석화 등 연극 무대와 안방극장을 넘나드는 베테랑 배우들이 그의 작품마다 반복 등장하며 호흡을 맞췄다.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캐스팅에 신선함이 떨어지거나 '인맥 캐스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깊이 이해하는 '페르소나'로서 극에 현실감을 더했다는 시선도 공존했다.

안판석 감독은 오는 10월 공개를 앞둔 ENA 새 드라마 '연애박사'의 촬영과 편집까지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 현실적인 연출 프레임과 독창적인 음악 기법으로 '안판석표 드라마'를 구축해 온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드라마사의 족적을 남겼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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