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MBC PD로 연출 생활을 시작한 안판석 감독은 수십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작은 2007년 방송된 MBC '하얀거탑'이다. 일본 원작을 뛰어넘는 촘촘한 연출과 권력 및 욕망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최고 시청률 20.8%라는 신화를 썼다. 단편적인 선악 구도를 넘어 리얼리즘 정치·메디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 감독의 연출 미학을 상징하는 시그니처는 '음악'과 '호흡'이다. 장면을 자르지 않고 길게 끌고 가는 롱테이크 연출 위에 특정 OST나 올드 팝송, 클래식 음악을 끊지 않고 유독 길게 통째로 깔아두는 기법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대사 없이도 음악과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감정선을 전달하며 '안판석표 멜로'의 짙은 여운을 완성했다.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안판석 사단'의 존재감도 뚜렷했다. 길해연, 오만석, 서정연, 장소연, 주민경, 윤석화 등 연극 무대와 안방극장을 넘나드는 베테랑 배우들이 그의 작품마다 반복 등장하며 호흡을 맞췄다.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캐스팅에 신선함이 떨어지거나 '인맥 캐스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깊이 이해하는 '페르소나'로서 극에 현실감을 더했다는 시선도 공존했다.
안판석 감독은 오는 10월 공개를 앞둔 ENA 새 드라마 '연애박사'의 촬영과 편집까지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 현실적인 연출 프레임과 독창적인 음악 기법으로 '안판석표 드라마'를 구축해 온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드라마사의 족적을 남겼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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