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강말금이 연기한 고혜진은 누구보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인물이었다. 일과 사람을 향한 애정을 놓지 않는 고혜진의 촌철살인 대사는 보는 이들의 막힌 속을 뚫어줬다.
강말금은 박경세(오정세 분), 황동만(구교환 분) 등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빛났다. 경세와는 오래된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익숙함과 애틋함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부부이면서도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경세와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황동만을 링 위에 세운 고혜진의 리더 면모도 눈길을 끌었다. 고혜진은 거침없는 현실 조언으로 동만을 바로 서게 만들고,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책임감으로 동만의 영화 제작을 끝까지 이끌었다.
A. 마지막 촬영 때는 섭섭한 마음이 컸다. 이 좋은 작품, 이 좋은 팀과 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어린 시절 마지막 공연을 마쳤을 때처럼 섭섭했다. 방영이 시작되고 시청자분들과 함께 한 회 한 회 지켜보면서, 우리의 '모자무싸'가 도착해야 할 세상에 드디어 왔다는 생각이 들고, 이 작품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부터 TV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즐거움과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종영을 앞두고는 마음이 밝다.
Q. 매 회 촌철살인 대사로 안방극장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혹은 공감됐던 대사는?
A. “8회 엔딩 장면을 좋아한다. 8회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황동만의 영화 제작이 결정되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고 너무 재미있었다. 대본을 읽고 멋진 임무를 받았다 생각했다. 양쪽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액팅은 현장에서 감독님과 의논해서 결정했다. 동만이의 앞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 같아 하고 나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좋아하는 대사 중에 하나를 꼽자면, 9회 마지막 동만의 대사 ‘내 속에 악은 없어. 강은 있어!’이다.
Q. 고혜진은 권력이나 이익에 편승하지 않는 태도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A. ‘PD는 사랑이다. 내가 사랑이다’라고 공책에 적고 잊지 않으려고 했다. 반짝반짝하는 바보들을 사랑하는 게 이 사람의 정체성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단단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많은 갈등의 사이에 있으면서도 걱정스러워한다기보다는 지켜보고 결정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후반부였다. 일이 어그러지는 일은 처음도 아닐 것이고 다음 기회가 또 생길 수 있지만, 이혼의 위기는 고혜진 개인에게 삶의 전제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덩달아 강말금도 그 무게를 감당하며 힘들었던 것 같다.
Q. 극 중 고혜진은 늘 당당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내면의 외로움이나 고뇌도 있었을 것 같다.
A. 8회에서 '낙낙낙'이 엎어지고 한바탕 춤추고 난 후, 고혜진이 하는 말은 ‘그런 글을 쓰던 그 남잔 어디로 갔을까’이다. 가장 솔직한 순간에, 억울한 바깥 일이 아니라 이제는 사랑이 식어버린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마음 가장 깊숙한 곳의 고민이다. 20년 전 '애욕의 병따개'로 인해 사랑도, 영화도, 본격적인 인생도 시작됐다. 이후 결혼 생활 동안 박경세 감독의 영화 다섯 편을 만들었지만, 그 과정 중에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을까. 그런 계획이 있었을 때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포기했다든지, 그들의 20년 세월 동안 여러 가지 굴곡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박경세의 매번의 작품을 통해 일종의 러브레터를 받으며, 흔들리지 않는 사랑 속에 살았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한편, 혼자 있을 때에도 이 사람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이 사람은 일을 한다. 일이 삶의 중심에 놓인 일, 인간이라고. 영화, 일, 삶, 사랑이 오래전부터 다 섞여버려 구분될 수 없는 삶을 산다고. 복잡하지 않고, 센티멘털한 감정에 잘 빠지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혼의 위기 전, 삶의 전제가 튼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A. 가까이에 독립 영화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공모전에 내고 면접을 보고하는 이야기가 와닿았다. 시나리오 한 편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말금은 ‘나에게는 창작의 샘이 없다’며 애초에 접었던 일이다. 그만큼 좋은 글, 이전 자신의 글과는 다른 새로운 글을 써내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 있다. 박경세가 대본 언제 나오냐는 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장면도 공감한다.
Q. 오정세 배우와의 케미가 돋보였다.
A. 오정세 선배를 존경한다. 순간의 재치와 아이디어가 뛰어나면서도 해석이 깊다. 준비한 연기의 플랜이 명확하면서도 상대방을 감지하고 배려한다. 언제나 씬이 알차게 재미있게 완성되는 방향으로 집중하신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카메라가 꺼져있는 동안에는 전체관람가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긴장이 풀리게 한다. 한 사람에게 공존하기 힘든 장점들이 선배에게 담겨있어 신비했다. 함께 현장에 있는 모든 시간이 좋았다. 혜진에게 경세는 순정한 사랑인 것 같다. 동만이 영화에서 받은 에너지로 '국민 스트레스 관리위원회' 최종회까지 힘차게 써나가기를, 촬영 잘 해서 좋은 작품으로 완성시키기를, 자랑스러워하는 경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Q. 강말금 배우 역시 연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순간이 있었는지?
A. 30대에 나는 황동만이었고 박정민(정민아 분)이었다. 황동만이 친구들 사이에서 하는 미운 짓, 혼자 있을 때의 시간들, 박정민이 자신의 무능을 가리기 위해 보이는 천진한 방어의 모습들이 내 모습이었다. 그때는 매일이 나 자신과의 전쟁이었다. 그 전쟁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데에는 안과 밖의 힘이 모두 필요했다. 그 과정이 나만의 가장 소중한 스토리이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대중들과 공론의 장에서 함께 만나니, 새롭게 깨닫게 되고 마음이 환하고 기쁘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대군부인' 감독, 알고보니 '막돼먹은 영애씨' 연출자였다…"여성 캐릭터 주도적으로 변해" [인터뷰]](https://img.tenasia.co.kr/photo/202605/BF.44414261.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