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연극을 하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에요.” 김광석을 유독 좋아한다는 윤제문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노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윤제문은 MBC 에 출연했을 때 유재석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이 노래를 통기타로 연주하면서 노래할 때만큼은 예능의 어색함을 떨쳐버린 모습이었다. 쓸쓸한 기타 선율보다 더 쓸쓸한 김광석의 목소리가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라고 내뱉으면, 날카로운 기억이 하나씩 위로를 받는다. SBS 에서는 길라임(하지원)과 김주원(현빈)이 나란히 누워 눈을 맞췄을 때, 액션스쿨 선배(장서원)가 부르는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사랑의 시작됨을 느끼는 순간, 이별을 가늠해야 했던 길라임과 김주원의 상황을 김광석의 노래가 대신해 아픈 사랑을 위로한 셈이다. 김광석이 떠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누군가의 이별과 아픔을 어루만지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연극 을 공연할 때 이정선의 ‘행복하여라’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후에 이정선 씨의 노래를 듣다 보니까 ‘우연히’라는 좋은 노래가 있더라고요.” 윤제문이 추천하는 ‘우연히’는 1987년 발매된 앨범 의 수록곡이지만 지금은 통 구하기 어려운 희귀음반이 되었다. 해바라기와 신촌블루스에서 포크와 블루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정선은 ‘산사람’, ‘섬소년’, ‘오늘 같은 밤’ 등을 만든 기타리스트이자 가수. 그리고 포크송을 섭렵하게 만들었던 ‘통기타 교본의 교과서’, 의 저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박정현이 이 곡을 록으로 편곡해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일지라도 ‘우연히 그대를 본 순간~’이란 구절을 반복하게 하는 쉬운 멜로디는 ‘우연히’에 금세 스며들 수 있게 한다.

“요즘 굉장히 많이 듣는 곡이에요”라며 윤제문이 추천한 노래는 ‘친구여’다. 작년에 발표한 바비 킴의 3집 < Heart & Soul >에 수록된 곡. 이 앨범은 여느 앨범보다 바비 킴의 다양한 색깔을 만나볼 수 있게 했다. R&B부터 록까지 장르를 편식하지 않으면서도 노래에 자신의 색깔을 담으려고 했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집 앨범에서 바비 킴과 강산에가 각각 작곡과 작사를 맡아 함께 불렀던 ‘친구여’는 록과 스카 리듬 등이 혼합돼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곡이다. 특히 ‘저 언덕 위의 큰 나무가 되어 준 내 친구여’라는 가사 자체는 잊고 지낸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툭툭 던지는 바비 킴의 창법과 자유로운 바람 같은 강산에의 창법은 서로 친구로 지내기 전 어색함이 감도는 첫 만남 같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친근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해지는 곡이다.

“강산에 씨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음악영화인 을 촬영할 때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서 형, 동생 하기로 했어요”라며 강산에의 ‘물 좀 주소’를 추천한다. ‘물 좀 주소’는 강산에 < Vol. 4 - 하루아침 >에 수록된 곡으로, DJ 달파란과 하찌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새로운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강산에스러움’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기이한 앨범. ‘갑돌이와 갑순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쾌지나 칭칭나네’ 등의 노래가 일렉트로닉으로 리메이크됐다. 그 중 ‘물 좀 주소’는 1974년에 발표한 한대수의 1집 앨범 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한대수의 거친 음색은 대중음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곡의 소재가 ‘물’임에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물 좀 주소’가 시대적 갈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갤럭시 익스프레스, 어어부 프로젝트 등 많은 인디밴드의 리메이크 곡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시대가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열 마디의 설명보다 직접 부르는 노래 한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하는 곡이 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쓸쓸함이 강조될 수도,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곡이 ‘철 지난 바닷가’다. 윤제문이 부른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는 늦가을을 연상시키는 기타 선율에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얹어져 아련한 옛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이 수록된 에는 유독 ‘비’에 관련된 노래가 많다. 송창식이 작사, 작곡한 ‘창밖에는 비 오고요’, ‘비의 나그네’, ‘비와 나’ 등에서 말하는 ‘비’는 님이 오시는 신호이기도 한 동시에, 떠나간 사람을 그립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유독 자연을 소재로 노래하는 송창식 때문일까. 그의 노래는 가슴 한구석에 묻어 놓았던 추억의 장소로 우리를 부른다. 을왕리에서 조개구이에 소주 한 잔을 하며 이 노래를 듣는 윤제문처럼.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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