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은 SBS 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종종 짤막한 에세이가 올라오기도 하고, 몇 달 전 시작한 트위터에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고등학교 시절 “어디선가 나에게 빛을 비춰주고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봐주길 바라며” ‘연예인’이 되길 꿈꿨던 소년은 정작 KBS 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나서야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시간을 가지며 어른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지만 “일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나에 비해 가볍다”고 말하는 그에게 글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재신이 시국을 비판하는 홍벽서를 써서 뿌리는 것에 대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속에 담겨 있는 말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위이기도 한데, 그동안 미니홈피에 주로 글을 써 오다 몇 달 전 트위터를 시작했어요. 어떤가요?
유아인 : 지방에 내려가서 촬영을 하다 보면 내가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절실해요. 서너 달 동안 내가 나로서 살 수 없는, 내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컸죠. 그런데 트위터를 하면서 사람 엄홍식으로, 배우 유아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소통한다는 게 많은 위로가 됐어요. 어쩌면 아주 큰 축복이고 영광이고, 내 한 마디에 대한 수천 명의 의견을 수렴해 들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배움이더라구요. 물론 가벼운 말도 있고 판에 박힌 말도 있지만 적지 않은 멘션들이 나를 일깨우고 가르침을 주고 내가 얼마나 갇혀 있는 인간인지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는 게 좋아요. 그래서, 계속해야죠. (웃음)

“청춘이란 말이 새로 쓰이면 좋겠어요”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사실은 그 수천, 수만 명이 보고 듣기 때문에 계속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유아인 : 많은 사람들이 제가 트위터를 계속 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입을 닫게 만들기도 해요. 그것과 싸우는 게 쉽지 않아요. 저도 독립투사나 반골로 태어난 거 아니거든요. 편안한 게 좋고 걱정거리가 없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거야말로 진정한 고립이고 나를 불행한 인간으로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글을 억지로 끄집어내기도 하는 거예요. 글을 너무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러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나를 너무나 불행하게 만드니까 ‘나는 그럴 수 있어, 나는 말할 수 있어, 나는 끊임없이 말할 거야, 너희가 내 입에 재갈을 물리지만 난 끊임없이 얘기할 거야, 나는 지지 않아, 나는 무능력하지 않아’ 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힘들어요.

내가 나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게 힘든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그걸 확인하고 싶다는 건가요?
유아인 : 네,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이십 대답게 사는 모든 행위가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아주 안온한 삶에 대한 갈증도 있어요. 편안하면 좋겠고, 예쁘게 웃으면서 돈 벌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는데 그걸 계속 떨쳐내고 이십대의 나를 억지로 끼워 넣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이미 조숙증을 앓았던 사람이고, 세상을 요령 있게 살 수 있는 룰 같은 것도 어느 정도 터득했는데 그걸 버려야 하는 거예요. 나는 너무 현실적인 놈인데 현실에 머물러 있지 못하겠다는 딜레마에 빠진 거죠. 왜냐 하면 세상에서 성숙이라고 하는, 어떤 해답을 찾고 거기서 멈추고 가진 것들을 지키면서 눌러앉는 방식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미성숙이거든요. 끊임없이 답을 구하고 질문하고 앞으로 나가고 무너지기도 하는 거야말로 진짜 성숙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청춘이란 말이 새로 쓰이면 좋겠어요. “아유, 저 친구 청춘이야”라고 하는 건 “저거, 어린놈이야”라는 뜻이잖아요. ‘청춘’이 그저 미성숙하고 치기어리고 열정만 가득한 이상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 성숙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진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다시 쓰이면 좋겠어요.

트위터에 쓴 글 중에 노동이나 인권 관련 이슈에 대한 것도 있었어요. 사회에 대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임에도 배우가 그런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순간 ‘정치적’이라는 굴레가 씌워지잖아요. 그로 인해 굉장히 피곤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아요?
유아인 : 신경 쓰여요. 걱정되고, 무서워 죽겠어요. 그런 말 한 마디 하고 나면 밤에 잠을 못 자요. (웃음) 하지만 적어도 내 판단에 의하면, 그걸 할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 혹은 일부가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내가 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 있고 깨어 있고 싶은 거예요. 심지어 난 정치 얘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다 정치라는 시스템의 철저한 지배 속에서 살아가면서 정치는 그저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는 건 SBS 에서 고현정 씨가 얘기한 것처럼 너무 무책임한 국민인 거예요! 좋은 일이니까 무조건 하는 거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니까 무조건 날 서서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잘 표현할 수 있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을 소개하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 정도조차 너무 하기 힘든 사회고 연예계의 시스템이라는 게 슬픈 일이지만요.

“욕도 하고 술도 마시고 클럽 가는 걸 의식적으로 보여주기도 해요”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 MBC 스페셜 >을 보았다고 쓴 글이 있었죠. 타블로 씨를 둘러싼 학력 위조 의혹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짐작했는데, 유명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금 한국 사회의 심각한 병폐와 마주하는 것 자체로 고통스런 방송이었어요. 언제 타블로 씨와 같은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시장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유아인 : 그 생각을 했어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보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쥐죽은 듯 살아야 하는 게 연예인일까. 사실 제가 방송 한 편을 보고 뭐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얘기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그 거대한 현상 속에 있는 사람이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고 나 또한 집에 가면 네티즌인데, 한 사람은 의심하면서 그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 면에선 나 또한 많이 부족했던 것 같고. 그런 얘길 하고 싶었을 뿐인데 와전되고 곡해되고 편 가르기가 되고 고깝게 들리기도 하고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기사도 나갔던데 내가 쓴 말이지만 “시대의 상처”, 아우 오그라들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지가 뭔데 시대의 상처래?”라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정말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스템이, 혹은 세상의 규범이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데도 그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건 피곤한 일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기도 하구요.
유아인 : 내가 날 포장하는 순간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포장 안에 갇혀버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전 일부러 그 크기를 좀 크게 가져가려고 해요. 난 욕 하는 애야, 술도 마시는 애야, 난 클럽에서 춤도 춰. 별 거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들이 필요해요. 왜냐면, 마치 그래선 안 되는 것처럼 돼 있으니까.

완전무결하게 도덕적인 이미지에 갇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밖에 남지 않기도 하죠.
유아인 : 맞아요. 우리의 눈이 커 나가고 문화예술의 수준이 높아져가는 만큼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더 많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면 좋겠는데 전 그냥 스물다섯 살의 아주 쪼매난 배우일 뿐이잖아요. 그래서 ‘왜 어린놈이 저런 말 하는 거야’ 라고 폄훼되지 않을 수 있게 서른 살, 마흔 살에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 선배님이 계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도 인간으로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보여주시는.

“일은 인간으로 살아나가는 진짜 내 삶에 비해선 가벼워요”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유아인│“숨을 쉬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깨어 있고 싶어요” -2
지금은 배우들의 세대도 조금씩 바뀌는 시점인 것 같으니까 달라지지 않을까요.
유아인 : 세대가 바뀐다는 걸 느끼긴 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젊은 나이의 연기자, 혹은 가수들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시스템에 자기를 알맞게 맞춘다는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끝나고 나서도 많이 봤어요. ‘연예인은 이렇게 해야 돼. 이렇게 웃어야 되고 행동해야 되고, 연예인은 사람 많은 데서 이렇게 생긴 모자를 눌러쓰고 다녀야 되고…’ 그 싱그러운 애들이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인간으로서 바탕이 형성되기 전에 이 바닥에 뛰어드는 건 아주, 안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애들은 안하면 좋겠어요. 내가 그 나이로 다시 돌아가도 안 할 거고. 이 일을 하면서 진짜 자아를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건 욕심이에요. 저도 미친 놈, 돌아이 소리 들으면서 일해 왔고 순간순간 이 일을 하지 않아야 되는 게 아닌가 고민했거든요. “쟤는 일을 너무 가볍게 여겨”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맞아요. 가벼워요. 일은 나에 비해, 인간으로 살아나가는 진짜 내 삶에 비해선 가벼워요. 그러니까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행복한 배우가 되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는 걸 생각하고 일을 하면 좋겠어요. 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면 좋겠어요.

다시 돌아가면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할 만큼 힘들었다면 그 동안 도대체 무엇을 동력으로 지나온 것 같아요?
유아인 : 우직했던 것 같아요. (웃음) 내 신념과 가야 할 길이 분명했고, 그걸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조급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이를테면 사람들은 십 년 후의 방대하고 이상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십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하고 타협하며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떤 면에선 비슷해요. 그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음에도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 속에서 충분히 내 신념을 지키고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면서도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스물다섯에 이루지 않아도 돼, 서른다섯이어도 되고 마흔 다섯이어도 돼.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나를 잃는 것보다는 나를 지키면서 천천히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거구요. 사실 지금 이렇게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얘기하고 있지만 저 역시 또 어떻게 변질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예인들이 말하는 “초심 지키겠습니다”가 “항상 똑같이 겸손하겠습니다”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초심이라는 건 내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무엇을 찾고 있으며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해 내 마음 제일 밑바닥에 있는 생각인 것 같아요. 그게 항상 1번에 있어야 하는 건데 2번이 되고 3번이 되는 순간 변질돼 나가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 죽겠어도 1번은 지키자! (웃음) 그 다음은 현실적으로 조금 뒤바뀌더라도 말이에요.

스타일리스트. 지상은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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