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를 가늠하는 첫 번째 지수는 시청률이다. 하지만 인기 PD는 오직 시청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 어떤 PD들에게 프로그램은 곧 그 자신이기도 하다. MBC 은 김태호 PD의 작가주의적 설계도를 통해, KBS ‘1박 2일’은 정해진 길 바깥으로 행군하는 나영석 PD의 뚝심을 통해 완성된다. 이처럼 인기 있는 예능 PD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 혹은 프로그램에 새겨 넣는 시그니처가 있다. 과연 그들은 현재 맡은 프로그램 외에서도 자신만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모이는 순간을 상상해보았다. 다음은 인기 PD들이 한 데 모여 자신만의 노하우를 겨루는 가상의 프로그램 에 대한 역시 가상의 제작 노트다.

첫 미션으로 서로의 프로그램 바꿔 연출하기를 선택한 건 어쨌든 이들의 색깔을 보여주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 UV 신드롬 >의 박준수 PD가 아니라면 누가 ‘탄탄대로 가요제’를 보고서 정형돈이 빅뱅 지드래곤의 패션 멘토였노라 주장하는 ‘정형돈 라이즈’를 꾸며낼 생각을 할까. 화면 속 정형돈이 지드래곤에게 “패션이 정말, 제로다!”라고 꾸짖는 동안 새로운 < UV 신드롬 >에서는 나영석 PD가 유세윤에게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UV의 음악 세계만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러면 저희도 굳이 웃기는 거 안 시키겠고요, 다만 지금 공연을 마치셨는데 우리나라 공연 문화의 꽃이죠, 2인 3각 달리기 한 번만 하시죠. 싫으시다고요. 그럼 저희 제작진이랑 2인 3각 달리기를 해서 이기시면 무대는 넓고 하늘은 푸르죠.” 아, 출연자를 회유하려면 저렇게 차분한 목소리로 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차분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불길한 진동과 함께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이경규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니, 내가 김태호 PD랑 하기로 했던 거 ‘이경규가 간다 – 월드컵’ 아니었어?” “아니요, ‘이경규가 간다 – 양심 냉장고’인데요.” “나 지금 태호가 월드컵 열리는 브라질 보내준다고 해서 비행기 탔는데 지금 이게 알래스카 행이라네?” “알고 가는 거 아니셨어요? 알래스카 김만덕 씨에게 냉장고 파시는 게 이번 촬영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뭐, 팔아?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아, 어쩐지 이경규 선배가 군말 없이 응했다고 했더니 이런 트릭을 짰구나. 자신이 만든 감동의 프로젝트가 이렇게 변모한 걸 보면 원조 김영희 PD는 어떤 마음일까. 정작 김영희 PD는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달동네 특설 무대 위에 올린 감동의 무대를 보고 흐뭇해하느라 이 일을 모르겠지만.
이 때 갑자기 조연출이 다급하게 외쳤다. “PD님! 스포일러 떴어요!” 조연출이 가리키는 모니터에는 장혁재 PD가 연출한 ‘1박 2일’에 대한 스포일러 기사가 떠있었다. ‘김하늘과 이승기, 새로 찍은 ‘1박 2일’ 여배우 특집에서 사랑의 어부바 게임으로 서로의 마음 떠봐. 김수미, 나도 호동이보단 승기가 좋아.’


“PD님! 또 저희 기사가!” 뭐야, 또 스포일러냐. 이젠 익숙해진 H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기사를 읽었다. ‘ H PD 하차. 지금까지는 파일럿 개념. 앞으로 방송사 파격 지원 아래 본격적 시즌 2 시작. 프로그램 새 PD는…’ 기사를 읽던 H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 우승자에게?’ 순간 무대 위에 선 7명 PD의 눈이 번쩍 빛났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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