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중파 방송사는 더 이상 이슈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방송사는 그 자체가 뉴스거리다. 한 방송사의 수장은 청와대에서 ‘조인트’를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또 다른 방송사의 사장은 개그프로그램에 대해 일일이 지적한다. 또한 몇몇 프로그램은 존폐의 위기를 맞거나 그 성격이 대폭 변화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2년 동안 한국의 방송사들은 숱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결국엔 방송사 사장과 정치권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상 초유의 일마저 벌어졌다. 한국의 방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가 KBS 정연주 전 사장의 KBS 퇴임과 YTN 사장 교체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정부의 방송 정책을 짚어보고,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정리했다. 또한 KBS 김인규 사장의 방송 정책에 대한 입장과 우리가 어쩌면 맞이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현 정부는 끊임없이 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왔다. YTN과 KBS 사장이 교체됐고, 미디어법 개정으로 대기업 및 신문의 공중파 진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부의 방송 정책은 시기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과 MBC < PD수첩 > 오역 논란 당시 정부가 내세운 것은 법이었다. KBS 사장 교체의 교체는 법으로 명시된 정부의 권한이고, MBC < PD수첩 >의 광우병 쇠고기 관련 보도는 일부 오역에 의한 오보로 고소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법적으로 KBS 사장을 임명하되 해임할 수 없다거나, < PD수첩 >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언론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는 생략돼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적어도 법을 통해 명분을 쌓았다.
더 이상 법의 테두리에 서있지 않는 정부의 영향력

김우룡 전 이사장의 발언은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법이라는 딱딱한 절차나 효율성이라는 명분은 더 이상 필요 없다. MBC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장을 불러 ‘조인트’를 까면 그만이다. 그리고, 정부는 콘텐츠 하나하나에 영향력을 갖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 에서 어린아이가 ‘빵꾸똥꾸’를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인규 KBS 사장은 KBS 에서 사회 풍자를 하는 캐릭터 ‘동혁이 형’이 보수 방송단체로부터 비판 받은 것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답을 내놓았고, KBS 에 대해 “스토리텔링에 문제가 있다.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콘텐츠의 내용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서라도 방송사 사장이 자사 콘텐츠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것이 제작진에게 보이지 않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KBS 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경주 최 씨 가문을 미화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논란을 빚었다. 이념적인 문제나 콘텐츠에 대한 호오를 떠나, 시청자들은 정부의 방송 정책이 자신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눈에 띌 만큼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야할 때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방송사 사장이 ‘조인트’를 맞고, 방송통신위원장이 여기자들 앞에서 “여자는 취업하지 말고 현모양처가 돼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미 정부가 언론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공언한 것과 같다. 김재철 MBC 사장은 김우룡 전 이사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직후 MBC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중에는 직원들이 제작거부까지 하며 과거의 직책에서 물러나게 했던 인물도 포함돼 있다. 특히 < PD수첩 >을 이끌며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용산 참사 등 민감한 문제를 다뤘던 김환균 CP는 시사교양국을 떠나
창사 50주년 기획단으로 발령 받았다가 본인이 거부 의사를 밝힌 끝에 시사교양국에 남게 됐다. 아무리 내부적으로 많은 반발이 있어도, 정부와 그들이 임명한 방송사의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이제는 방송 관계자들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보고 판단해야할 때”라고 말한 것은 곱씹어볼만 하다. 지금까지 정부와 방송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방송계 내부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그 결과로 콘텐츠의 내용이 바뀌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2년 전 정연주 전 사장이 KBS에서 물러날 당시 “어쩌면 < PD수첩 >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던 우려가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의 방송 정책이 부딪치는 곳은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가 보는 TV 브라운관 앞이다. 시청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난 2년간 정부가 추진해온 방송 정책은 이제 시청자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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