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최은경의 등장이야 말로 ‘아나테이너’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똑 부러지게 생긴 아나운서들과 달리 동그란 얼굴로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그녀는 뉴스데스크에 앉아서 촌철살인을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웃어야 할 때 웃고, 눈물이 날 때 울어버리는 친근한 진행자로서 재능을 드러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과정은 비록 ‘아나운서’ 최은경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었을지언정 다정하고 편안한 방송인으로서 그녀의 장점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미 방송된 내용들을 재구성하는 MBC <해피타임>이나 ‘맛집 소개’라는 방송 목적의 한계 때문에 아이템이 반복되기 십상인 MBC <찾아라 맛있는 TV>, 또는 연예인들의 속내를 끌어낼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KBS <여유만만> 등의 프로그램에서 최은경의 발랄하면서도 순진한 성품은 방송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중요한 순간에 진심을 부여하는 작용을 했다.

유쾌하면서도 모난 곳 없는 방송 스타일에 대해 최은경은 ‘어디에 꽂혀서 뭐라도 해야 했는데, 정말 평범하게’ 보냈던 학창시절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잘 거들 수 없어’ 아쉽다고 말하지만, 때때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찰떡같은 맞장구 보다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진 공감의 리액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방송을 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한 여자, 화끈한 일탈 한번 해보지 못해 노래 속에서 연애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발견한다는 이 여자는 오히려 누구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 할 수 있는 방송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된 그녀는 MBC FM4U <최은경의 음악동네>를 진행하면서 신곡들을 소개하는 간간이 아름다움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학창시절의 사랑노래들을 함께 선곡함으로써 청취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DJ가 되기보다는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살가운 친구, 혹은 언니 같은 DJ로서 활약하고 있다. 대부분의 청취자들과 다름없이 불같은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적은 없지만, 사랑의 환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를 즐겨 듣는 평범함 때문에 더욱 특별한 최은경으로부터 ‘나의 가장 로맨틱한 음악’들을 추천 받았다.

1. <맘마미아> OST
“대학생일 때는 아바의 노래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오디오를 사서 들었는데, 그때도 별로더라구요.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까 아바가 새삼 좋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영화 <맘마미아>를 본 게 결정적이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상황들에 몰입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가사의 의미들이 정말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그 후로는 아바를 들을 때마다 영화 생각도 나고, 따라 부르게 되고, 이제는 왜 아바가 좋은지 알게 되었어요.” 최은경이 가장 먼저 고른 노래는 아바의 노래들로 구성된 영화 <맘마미아>의 사운드트랙, 그 중에서도 ‘Honey, Honey’다. 소피(아만다 시프리드)가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의 일기장을 읽으며 친구들과 함께 로맨틱한 상상에 빠질 때 흘러나오던 곡으로 막 사랑에 빠진 여인의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극의 상황과 잘 어우러졌다.

2. 화요비의
최은경이 두 번째로 고른 곡은 로맨틱의 대명사 오드리 햅번이 출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유명한 ‘Moon river’. 그러나 그녀는 최근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부쩍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 생각하게 된 화요비가 부른 버전을 더 추천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 노래에 반하게 된 이유 역시 의외의 순간 때문이다. “저도 <섹스&시티>를 참 열심히 봤거든요.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랑 빅(크리스 노스)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장면에서 ‘Moon river’가 흘러 나왔는데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랑 이 노래가 너무 잘 맞아떨어지더라구요. 그 때부터 이 노래만 들으면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로맨틱한 기분이 되더라구요.”

3. 토이의
‘토이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토이는 뛰어난 음악성 못지않게, 현대 젊은이들이 사랑에 대해 갖는 감성을 잘 포착해 낸 가사로 큰 인기를 얻었다. 최은경은 토이의 노래 중에서도 2001년 발표된 5집 에 수록된 ‘좋은 사람’을 특히 로맨틱한 곡으로 꼽았다. “로맨틱한 기억들은 대부분 대학교 때의 추억들과 관계가 있어요. 이 노래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줘요. 가사 하나하나가 그 무렵의 설레는 마음을 그대로 생각나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리고 김형중 씨의 풋풋한 목소리도 그 시절을 되새기는데 한 몫 해요. 뭐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이야기 같잖아요. 생활형 사랑노래라고 해 두죠.”

4. 김동률의 <귀향>
노래를 들을 때 가사의 매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최은경은 특히 이별 후에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네 번째 추천 곡으로 결정했다. “마치 그림을 보듯이 가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노래들을 좋아해요. 이 노래 역시 그렇죠. 로맨틱하다기보다는 굉장히 슬픈 노래잖아요. 그렇지만 다시 사랑을 꿈꾸고,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것 역시 로맨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생생하게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몰입하게 되는 노래입니다.”

5. 노이즈의
“최근 <내조의 여왕>에서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최은경이 고른 노래는 노이즈의 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4인조 남성 그룹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것’이다. 91학번인 그녀는 대학시절 이 노래를 즐겨 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즐거운 추억에 젖어 들었다. “제가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한창 X세대 열풍이 불었거든요. 신세대라는 개념이 유행했고, 그래서 새로운 음악들이 한꺼번에 등장했었죠. 서태지와 아이들, 신해철이 그 대표 주자였고, 테크노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노이즈 역시 당시로서는 새로운 음악을 하던 그룹이었어요. 이들의 노래를 듣느냐, 마느냐로 세대를 구분하기도 했죠. 당대의 유행어였는데, 지금은 추억속의 노래가 되었네요.”

“얼마나 즐겁게 그 일에 집중하는가, 그게 중요한 문제더라구요”

원래 얼굴 모습이 그렇게 생겼나 싶을 정도로, 최은경은 인터뷰 내내 웃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작은 추억에도 금방 즐거워지고, 사소한 감정에도 목소리 톤을 높이는 그녀는 그 유쾌한 에너지를 통해서 ‘사랑스러운 아줌마’라는 최근의 트렌드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에서 한발 나아가 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에서도 특유의 발랄함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는 최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일 하는 순간에 얼마나 즐겁게 그 일에 집중하는가, 그게 중요한 문제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에는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어떤 사람들과 하는지 보게 되더라구요. 지금 하고 있는 시트콤도 동료들이 너무 좋아서 즐거워요.” 밝은 기운과 즐거운 에너지에 더해 나이에 걸 맞는 인생의 진리를 알아 가고 있는 최은경이야말로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 즐거운 그 느낌은 시청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있어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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