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비주얼과 칼군무, 정제된 퍼포먼스로 대표되는 K-팝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명작들은 종종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영역을 과감히 파고들었다. 기괴하고 섬뜩한 이미지 이면에 자리한 핵심은 괴물 그 자체가 아니다. 말로 직설하기 어려운 욕망과 집착, 외로움과 배신, 그리고 소중한 관계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원초적 불안이 '호러'라는 외피를 통해 시각화되는 것이다. 엔하이픈(ENHYPEN),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레드벨벳(Red Velvet)은 호러를 단순한 콘셉트 차원을 넘어 가장 인간적인 서사를 엮어내는 문법으로 확장한 대표적 사례다.
엔하이픈은 데뷔 초부터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설정을 팀의 독보적 서사 장치로 정착시켰다. 이들은 뱀파이어를 단순한 포식자나 위협적인 괴물로 그리는 대신, 운명적 결속과 통제 불가능한 애착, 희생이라는 역설적 감정을 탐구하는 매개체로 치환했다.
반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초자연적 존재를 일절 배제한 채, 가장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을 뒤틀어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다. 2020년 발표한 미니 2집 '꿈의 장: ETERNITY'의 타이틀곡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 (Can't You See Me?)' 뮤직비디오가 그 정점이다.
친구들과 집에서 장난을 치며 어울리는 평범한 일상은 작은 오해와 어긋난 시선들이 쌓이면서 순식간에 날 선 긴장감으로 물든다. 붉게 짓이겨진 딸기와 토마토는 무해한 장난을 선혈이 낭자한 폭력의 이미지로 치환하고, 평온했던 안식처는 불길 속으로 침몰한다. 이 곡이 포착한 공포의 실체는 외부의 괴물이 아닌 '신뢰의 붕괴'다.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 오해받고 소외되는 사춘기 특유의 단절감과 관계의 파탄은, 그 어떤 초자연적 악령보다도 서늘한 심리적 공포로 리스너의 숨을 죄어온다.
화려한 무기들과 서늘한 의식이 집 안을 가득 채우고 희생자가 탈출을 시도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곡은 경쾌한 업템포 비트를 잃지 않으며 멤버들은 시종일관 해맑은 미소를 유지한다. 무해해 보이는 외양과 잔혹한 의도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는 전통적인 점프 스케어보다 훨씬 깊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화사한 팝 클리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그 이면에 감춰진 위협을 흘리는 방식으로 K-팝 걸그룹 비주얼 아트를 한 단계 비틀어낸 것이다.
러닝타임 몇 분 남짓의 짧은 뮤직비디오 안에서 인물의 내면 갈등과 관계의 붕괴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호러라는 장르적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딘가 비틀려 있다'는 감각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핼러윈이 남기는 핏빛 분장과 악몽의 이미지 너머, K-팝이 잔혹극을 통해 진짜 묻고 있는 것은 괴물의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불안이다.
Guzman Gonzalez Hannah 텐아시아 기자 hannahglez@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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