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연예인들에게 공황장애는 꽤나 흔한 병이 됐습니다. 일상화된 불안 속에서 일반인보다 더 큰 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활동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왜 만성적 불안에 시달릴까요. 또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을까요. 연예인들의 불안과 공황장애 문제를 텐아시아가 3차례에 걸친 시리즈 기사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겪는 불안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가 활동을 계속하기 어렵거나 휴식을 원할 경우, 얼마나 어떻게 쉴지 정해진 매뉴얼이 있나요?"
"매뉴얼은 따로 없습니다. 휴식이나 심리 치료를 권유할 뿐입니다."
제도는 그럴싸하게 갖춰졌지만, '진짜 쉼표'는 없없다. 공황장애, 번아웃 등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스타들이 잇따르며 지원 체계는 겉보기에 넓어진 듯하다. 하지만 정작 탈이 났을 때 안전하게 활동을 멈출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유명무실한 간판에 그치고 있다.
텐아시아가 국내 연예기획사 24곳과 법조계, 공공기관을 취재한 결과, 10곳 중 7곳은 사실상 연예인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 치료 권유만 있을 뿐 휴식과 복귀를 보장할 명확한 기준은 사실상 없었다. 상당 부분 '구두 협의'에 그치고 있었다. 관련 사례가 없었던 곳은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탈이 나고 나서야 대책을 찾는 '후대응 구조'다. 병원비는 대주지만…기획사 24곳 '휴식 매뉴얼' 전무취재에 응한 대다수 기획사는 아티스트가 불안 증세를 보일 경우 전문의 진료를 연결하고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매니저가 치료 과정에 동행해 살피기도 했다. 마음의 병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건강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안착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24곳 중 명문화된 휴식 기준을 둔 곳은 전무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본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두고 필요할 경우 의료진의 소견을 종합해 회사와 협의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에 집중하게 하되, 촬영 일정 등은 제작진과 협의해 조정한다"고 전했다.
복귀 절차 역시 체계화된 규정 없이 개별 상태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진행된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본인 상태를 확인한 뒤 미팅이나 대본 검토처럼 부담이 적은 일정부터 서서히 늘려간다"고 전했다. 상태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 이면에는, 정작 보호가 절실할 때 휴식을 강제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는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연예인의 법적 지위가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연예인은 현행 근로기준법의 보호망 밖에 놓여 있다. 소속사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묻기 어렵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신체적·정신적 질환이 발생해도 일반 근로자처럼 병가나 휴직을 자유롭게 쓰는 구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연예계에서는 단순 사업자가 아닌 특수 노무제공자로 연예인을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연예계 현장과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도 만만찮다. '지원할 수 있다'에 그친 보호…계약서 앞 진단서는 무용지물제도적 울타리는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대중문화예술용역 계약서에 대중문화예술인의 인성 교육과 정신건강 지원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도록 정하고 한다. 다만 '명시'를 강제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개별 회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에도 연예인의 우울 증세 등에 치료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임의 조항인 데다, 회사가 어느 수준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더 큰 장벽은 수억 원대 계약금이 얽힌 제3자(광고주·제작사)와의 '외부 계약'이다.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내부 합의하더라도 크랭크인한 드라마나 광고 등 외부 일정까지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건강보다 위약금과 손해배상 책임이 우선되는 구조다.
이는 의사가 '3개월 휴식'을 진단하더라도 휴식이 곧바로 보장되지 못하는 이유다. 김태연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태연공동법률사무소 대표)는 "제3자와의 계약 및 재산 관계가 얽혀 있어 소속사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중단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공황, 불안 등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면 회사와 아티스트 모두 손해배상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참고 활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소속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올해 8월 말 기준 개인 신청 비율은 55.7%로 기획사를 통한 신청 44.3%보다 높았다. 기본 9회 상담이 끝난 뒤에도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위험도를 평가해 연장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연예인뿐 아니라 예술인 전반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을 대상으로 최대 12~22회에 이르는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필요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 등으로 연계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한정된 예산 탓에 올해 지원 사업은 8월 31일 자로 조기 마감됐다. 늦여름 이후 마음의 위기를 겪은 이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재단 관계자는 "마감 이후에도 문의가 이어져 신규 신청자에게는 다음 해 사업 재개 시점을 안내하거나 지역의 다른 심리지원 사업을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개인 아픔 아닌 '산업 재해'…'엔터 병가제'의 필요성전문가들은 연예인의 마음의 병을 '개인의 멘탈 관리 실패'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질환 발생 시 계약을 일시 정지하고 휴식권을 보장하는 '공식 병가 기준'이 표준계약서에 명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동준 변호사는 "정신건강 보호를 기획사의 호의나 아티스트 개인의 협상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경우 실제로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의 문을 열어두는 데서 나아가, 아플 때 죄책감 없이나 생계 위협 없이 멈춰 서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공식적인 쉼표'가 마련될 때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을 걷어낼 수 있다.
정세윤 텐아시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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