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겪었지만 이겨낸 스타들, 이들의 불안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왼쪽부터) 기안84, 서인영, 정형돈.
공황장애를 겪었지만 이겨낸 스타들, 이들의 불안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왼쪽부터) 기안84, 서인영, 정형돈.
편집자 주- 연예인들에게 공황장애는 꽤나 흔한 병이 됐습니다. 일상화된 불안 속에서 일반인보다 더 큰 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활동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왜 만성적 불안에 시달릴까요. 또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을까요. 연예인들의 불안과 공황장애 문제를 텐아시아가 3차례에 걸친 시리즈 기사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겪는 불안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이러다가 나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연예인병이라고 불릴 정도라서, 말 못하고 끙끙대는 스타들도 많아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늘어났다. SNS나 유튜브 시대에서는 연예인들을 둘러싼 불안의 정도가 더욱 높아진 영향도 있고, 과거에는 쉬쉬하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한 영향이다.

가수 서인영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황장애 약을 10년 넘게 복용 중이라고 밝혔다. 행사 무대를 앞두고 호텔에서 약을 챙겨 먹으며 "공황장애 약을 먹어주고 이제 제정신으로 시작하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황장애 탓에 약 10년간 행사 무대에 서지 못했고 차에 오래 타면 폐소공포증까지 찾아왔다고 털어놨다.

방송인 김신영은 공황장애가 심했던 당시 3개월 동안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못했다고 밝혔다. 비행기에서 처음 증상을 겪은 뒤 집에서도 방문을 모두 열어놔야 할 만큼 폐쇄된 공간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방송을 중단하기도 했다.

겉으론 화려하고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사실은 속으로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얘기다.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는 웃고 노래하고 연기하지만 뒤에서는 일상을 버티기 힘들 만큼 큰 불안을 겪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연예인 뿐 아니라 연예계 종사자들 중 상당수는 공황장애 약을 달고 산다"며 "연예계 전반에 걸친 불안의 수준이 위험 수준"이라고 말했다.
"내 자리 뺏길까 봐" 뜨면 불안하고 쉬면 더 불안하다…연예계 공황장애의 민낯 / AI이미지
"내 자리 뺏길까 봐" 뜨면 불안하고 쉬면 더 불안하다…연예계 공황장애의 민낯 / AI이미지
욕구가 제한된 연예인들, 눌렸던 불안이 터져나온다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불안장애 진료 인원은 90만명을 넘어섰다. 연예인들에게 있어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성 장애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2025년 예술인 심리상담에는 개인상담 1387명, 집단상담 609명 등 총 1996명이 참여했다. 사업 시작 이후 누적 참여자는 1만5266명까지 늘었다. 왜 이들은 더욱 불안에 노출돼 있을까.

클레이턴 앨더퍼 미국 예일대 교수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론을 보완하고자 인간의 욕구를 3가지로 정리했다. 생존(E), 관계(R), 성장(G) 욕구라 불리는 ERG 이론이다. 연예인은 직업적으로 이 세가지 욕구가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생존 욕구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것과 밀접하다. 연예인의 스케줄은 규칙적 수면과 거리가 멀다. 음식도 제한된다.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팬들이 들이닥칠 정도로 오롯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 한 현직 아이돌 매니저 A씨는 "평소보다 말수가 확 줄거나 잠을 거의 못 자는 경우가 있다. 촬영장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차에서 못 내릴 때도 있다"며 "워낙 빠듯한 일정 탓에 초기에는 단순 피로로 오판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가수 송하예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경험을 고백했다. 송하예는 몸과 마음이 좋지 않더라도 예정된 행사나 무대를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파도 밥은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 상황 때문에 회사가 됐든 팬들이 됐든 피해를 주는 게 더 아팠다"며 "책임감 하나로 무대에 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연예계에서 불안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불규칙한 생활과 낮은 경력 통제감을 꼽았다. 박 전문의는 "정해진 루틴 없이 랜덤하게 움직이는 생활이 반복되면 수면과 생활 리듬이 깨지고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연예인들은 관계 욕구도 상시적 불만 상태다. 연예인이 대중에게 받는 사랑은 연예인에게 대중이 주는 일방적 사랑이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는 감정적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시간이 부족해진다. 대중으로부터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관계 형성에 대한 태도를 보수적으로 바꾼다. A씨는 "아픈 본인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더 걱정한다"며 "몸이 안 좋아도 일단 현장까지 가보려고 하고, 정말 안 될 때가 돼서야 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A씨는 "특히 일이 잘되는 시기일수록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성장 욕구도 자신의 의지와 소속사의 방향이 다를 때 왜곡될 수 있다. 내가 아는 나와, 대중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 차이에서 오는 문제다. 연예인 개인의 특성보다 그룹 활동이나 소위 만들어진 '캐릭터'를 중요시할 때 극대화하는 문제다. 막상 쉬게 돼도 걱정은 남는다.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몇 달의 공백 뒤 다시 같은 자리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쉬면 잊히는 것 아니냐",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생기는 이유다.

실제로 송하예는 원하는 성과를 얻은 뒤 오히려 허탈함을 느꼈다고 했다. 히트곡 '니 소식'으로 좋은 결과를 내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기대와 달랐다. 그는 "결과로 보여줬는데도 별로 행복하지 않더라. 그게 오히려 충격이었다"며 "그때부터 내가 뭘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3가지 욕구는 상호작용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다. 반대로 동시다발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더 큰 정신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연예인들이 겪는 불안과 공황장애는 이런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을 때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결혼을 앞둔 가수 송하예가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텐아시아와 만나 단독 인터뷰에 나섰다. / 사진제공=니치뮤직
결혼을 앞둔 가수 송하예가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텐아시아와 만나 단독 인터뷰에 나섰다. / 사진제공=니치뮤직
연예인 뿐만이 아니다...제작자들도 고통 호소불안은 무대 위에 서는 연예인에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가수를 발굴하고 앨범을 만드는 제작자들도 연예인들이 느끼는 불안을 공유하곤 한다. 이 때문에 주요 엔터사들 대표나 프로듀서 중 불안과 관련된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다. 약이 없으면 엔터가 멈춘다는 말이 공연한 비밀일 정도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과거 인터뷰에서 "결과를 신경 쓰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고 털어놨다. 음원 성적처럼 자신의 힘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매달리지 않으려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시간 음원 차트를 계속 확인하는 직원들을 두고 "마치 주식하는 사람들처럼 그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제작자들의 불안은 예측불가능성에 기인하곤 한다. 아티스트와 제작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같다. 몇 달을 준비한 앨범이나 작품이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할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콘텐츠 하나가 소위 대박을 낼 수도 있다. 한 프로듀서는 "매 앨범을 낼 때 마다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박 전문의는 "본인의 노력만으로 결과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면 경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만큼 무력감이나 불안도 깊어진다"고 설명했다. 박 전문의는 "대중에게 항상 평가받아야 한다는 긴장감과 경쟁자들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료나 경쟁사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안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연예계에서 공황장애와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사진=텐아시아 DB
연예계에서 공황장애와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사진=텐아시아 DB
약 먹고, 댓글 안 보고...연예계에서 버티는 법연예인들은 어떻게 만성적 불안을 이겨내고 있을까. 극복 사레는 쌓이고 있다. 서인영은 공황장애로 약 10년간 행사와 페스티벌 무대에서 멀어졌지만 올해 다시 무대에 섰다. 여전히 약을 복용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송하예는 결과에 매달리지 않으려 했다.그는 "앨범이 잘됐으면 좋겠지만 그걸 생각한다고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라며 "오늘 내가 언제 일어났고, 상태가 어떤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중 반응도 일부러 멀리했다. 20대 중반부터는 댓글을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송하예는 "싫어할 사람은 어떻게 해도 싫어한다. 평가가 저와 일치한다면 고민하고 개선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며 "제 귀가 정확하다는 확신이 저를 지키는 방패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연예인은 작품의 흥행이나 대중의 평가처럼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계속 매달리면 무력감과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면이나 운동, 일정한 생활처럼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부분부터 챙기고, 증상이 반복된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치료를 받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이 없으면 다음 기회를 걱정하고, 잘되면 지금의 자리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현장에서 아티스트를 지켜본 매니저 A씨는 연예계의 불안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이 끊기면 끊겨서 불안해하고, 잘나가면 언제까지 이걸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잘돼도 불안하고, 안 돼도 불안한 면이 있는 직업입니다."

▶속병든 연예인들② <점집에 달려가고 무당에 매달린다> 에서 계속.

김세아 텐아시아 기자 haesmik@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