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배우 미요시 아야카가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출연한다. / 사진제공=CJ ENM, 싸이더스
일본 배우 미요시 아야카가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출연한다. / 사진제공=CJ ENM, 싸이더스
치열한 수싸움 속에서도 '타짜' 시리즈의 또 다른 변수는 테이블 곁에 앉은 여성 캐릭터에게서 나왔다. 20년 만에 시리즈 피날레를 알린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4', 감독 최국희)는 일본 배우 미요시 아야카를 새로운 히로인으로 내세우며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판의 흐름을 좌우했던 역대 여성 캐릭터의 계보 속에서 일본 배우의 기용은 익숙한 공식을 비튼 선택이다.

'타짜' 시리즈에서 여성 캐릭터는 매 시즌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단연 1편 '타짜'(2006)의 정마담이다. 김혜수는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명대사와 함께 관능미와 서늘한 비정함, 판을 설계하는 영민함까지 갖춘 정마담을 완성했다. 남성 타짜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욕망과 판단으로 판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팜므파탈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정마담의 인상이 워낙 강했던 만큼 후속편의 여성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그와 비교됐다. '타짜-신의 손'(2014)은 신세경의 허미나와 이하늬의 우사장이라는 투톱 카드를 꺼내 들었다. 허미나는 당돌한 배짱과 거침없는 성격으로 대길과 호흡했고, 우사장은 화려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두 캐릭터 모두 정마담처럼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판을 설계하는 인물로까지 확장되지는 못했다.

'타짜: 원 아이드 잭'(2019)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한층 더 약해졌다. 마돈나 역의 최유화는 미스터리와 유혹을 담당했고 영미 역의 임지연은 팀 플레이 속 활력을 더했지만, 두 인물 역시 서사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기보다는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결국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타짜'의 여성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이름은 정마담이다.

그만큼 김혜수가 세운 '정마담'의 벽은 높고 견고했다. 어설프게 농염함을 흉내 냈다가는 '정마담의 아류'라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었다. 미요시 아야카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타짜4'는 정마담의 공식을 정면으로 답습하는 대신 국적과 배경, 캐릭터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우회로를 택했다.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9월 23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CJ ENM, 싸이더스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9월 23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CJ ENM, 싸이더스
이번 '타짜4'는 국내 화투판을 넘어 글로벌 홀덤 포커판으로 무대를 확장한다. 미요시 아야카가 맡은 가네코는 야쿠자 조직을 배후에 둔 일본 기업의 본부장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통해 국내에도 얼굴을 알린 미요시 아야카에게는 첫 한국 영화 도전작이기도 하다.

가네코는 과거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들이 맡아온 로맨스나 유혹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거대 조직의 핵심에 서 있으면서도 내면에 깊은 상처와 복수심을 품은 채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판을 짠다. 장태영(변요한 분)과 박태영(노재원 분) 사이에서 적과 동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극의 향방에 직접 개입한다. 장태영과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긴장과 감정이 뒤섞인 농도 짙은 관계성을 형성한다.
'정마담' 김혜수 벽 20년째…'타짜4', 미요시 아야카로 새 판 짰다 [TEN피플]
미요시 아야카의 도회적인 마스크와 절제된 연기는 속내를 쉽게 읽을 수 없는 가네코의 포커페이스와 맞물려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감정을 크게 터뜨리기보다 눈빛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로 인물의 속내를 감추고, 장태영과 마주할 때는 냉정함과 흔들림을 동시에 담아낸다. 특히 적인지 동지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모호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가네코를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닌 또 하나의 플레이어로 세운다.

무리하게 정마담의 아우라를 넘어서는 정면 승부를 택하지 않은 것도 영리하다. 관능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서늘한 지략과 절제된 감정, 이국적인 분위기라는 다른 패를 꺼냈다. 그 결과 가네코는 정마담의 아류라는 함정을 피해 자기만의 자리를 만든다.

20년 동안 김혜수의 정마담이라는 강력한 기준점에 갇혀 있던 '타짜' 여성 캐릭터의 계보는 미요시 아야카에 이르러 비로소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타짜4'는 기존 공식을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결을 선택했고, 미요시 아야카는 그 승부수가 틀리지 않았음을 연기로 증명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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