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부지 전경. 왼쪽은 당초 공원부지였던 곳이다. 송이채 텐아시아 기자.
JYP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부지 전경. 왼쪽은 당초 공원부지였던 곳이다. 송이채 텐아시아 기자.
JYP엔터테인먼트(JYP)가 서울 강동구 고덕동 신사옥 건립 사업을 철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2023년 10월 신사옥 신축을 위해 고덕비즈밸리 토지 취득 공시를 한 지 만 3년 만에 백지화가 되는 셈이다.

10일 JYP 신사옥 건축설계를 맡은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 논현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텐아시아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JYP 신사옥이 사실상 백지화됐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전날 JYP측으로부터 사업 철수에 대한 입장을 전달받았다"며 "전면 백지화로 가닥이 잡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JYP측은 "다각도로 논의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JYP 신사옥 조감도 사진=강동구청
JYP 신사옥 조감도 사진=강동구청
공식 입장은 여전히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사업 지속의 핵심 조건인 공원 부지 원상회복이 어려워진 데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여러 절충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전면 백지화로 내부 결론이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JYP 신사옥 사업이 백지화 직전에 놓인 이유는 신사옥 예정지와 불과 20m 떨어진 1만3261㎡ 규모의 부지를 둘러싼 문제 때문이다. JYP가 신사옥 부지를 매입할 당시에는 공원용지였던 땅이 자족지원시설용지로 변경됐다. 용도 변경에 따라 해당 부지에는 용적률 400%를 적용받는 18∼19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JYP 신사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다. JYP 엔터로서는 처음 SH로부터 땅을 사들였을 때 옆 부지가 공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신사옥 건축 설계 목적이 모두 무용해지는 셈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건축학과 교수. 한경DB.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건축학과 교수. 한경DB.
유 교수는 JYP엔터가 곧바로 철수를 택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JYP 측은 당초 구상과 일부 차이가 생기더라도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복수의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SH가 모두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첫 번째 안은 같은 용적률을 적용하되 층수를 낮춰 6층 이하로만 지을 수 있도록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땅을 팔자는 것이었다. 이어 공원 위치를 조정해 새로 들어설 건물을 JYP 신사옥에서 더 멀리 떨어뜨리는 방안도 제안했지만 두 방법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사옥 건립이 중단되면 건물 한 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얻을 수 있었던 파급 효과도 사라진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JYP가 고덕동에 자리를 잡았다면 기획사와 영상 제작사, 공연 관련 업체, 호텔, 식음료 시설 등이 함께 들어오며 일대가 새로운 K팝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잃었단 것이다.

그는 "JYP가 들어오면 고덕이 성수동, 홍대, 압구정과 같은 K팝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며 "연관 기획사와 뮤직비디오 제작사, 호텔 등 여러 산업이 따라 들어오고 외국인 관광객도 찾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JYP가 들어온다는 전제 아래 주변 토지의 가치도 올라간 측면이 있다"며 "JYP가 빠지면 해당 부지뿐만 아니라 고덕동 일대가 누릴 수 있었던 장기적인 경제 효과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SH는 고덕강일지구 내 학교시설 설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법에 따라 녹지를 축소했다는 입장이다. 다른 녹지는 원형보존지 등으로 지정돼 축소하기 어려워 해당 공원 부지의 용도를 변경했다고 설명해 왔다.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부지 모습. 당초 공원이었던 왼쪽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JYP 신사옥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부지 모습. 당초 공원이었던 왼쪽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JYP 신사옥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유 교수는 이번 논란의 초점이 JYP의 조망권이나 프라이버시 문제에만 맞춰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애초 공원으로 확보된 땅을 개발용지로 변경한 결정 자체를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JYP의 디자인이 망가지기 때문에 공원을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 돼서는 안 된다"며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시민에게 꼭 필요한 공원 부지를 개발용지로 만들어 파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진단했다.

공원 부지를 줄여 당장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는 방식은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도시 자산을 소진하는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유 교수는 "내년에 농사지을 종자로 남겨 놓은 씨앗을 지금 배고프다고 밥 지어 먹는 것과 똑같다"며 "지금은 학교를 지었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그 피해는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된 도심 내 토지를 다시 공원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유 교수는 "경의선숲길처럼 철길이나 유휴부지를 공원으로 바꾼 사례는 봤지만 도심의 공원을 거꾸로 택지로 개발한 사례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며 "도심에서는 땅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한번 공원을 없애면 다시 만들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JYP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조감도. 유현준 교수 SNS
JYP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조감도. 유현준 교수 SNS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산하 공기업인 SH를 통해서는 공원 부지를 개발용지로 바꾼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용산공원을 주택용지로 개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고덕동에는 왜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SH나 강동구보다 상위에 있는 서울시라고 본다"고 말했다.

JYP가 잡은 방향성에 대해서는 "민간 기업은 자신의 이익과 사업 조건에 맞춰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과도한 대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SH가 해당 땅을 공원으로 복원하고 학교 건립 비용은 다른 재원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라며 "서울시는 이번 결정이 도시의 장기적인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one@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