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은 데뷔 39년 차에 숏드라마라는 낯선 형식에 도전했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정진영은 데뷔 39년 차에 숏드라마라는 낯선 형식에 도전했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영화가 커다란 창이라면, 드라마는 아파트에 있는 중간 정도 크기의 창, 숏드라마는 조그마한 환기창인 것 같아요. 크기는 다르지만 다 밖에 있는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한 장치죠. 형식에 따라 모양은 다르게 나올 수 있지만, 이야기는 모두 잘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진영은 데뷔 39년 차에 '아버지의 집밥'(감독 이준익)을 통해 숏드라마라는 낯선 형식에 도전했다. 숏폼을 잘 몰랐다는 그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야기나 배역 모두 배우로서 만나기 힘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오는 9일 극장에서도 공개되는 '아버지의 집밥'은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생 가족들의 밥상을 차려온 순애(이정은 분)는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못 하게 된다. 남편 하응(정진영 분)은 그런 순애를 걱정하기보다 아내의 집밥을 못 먹을 본인을 먼저 걱정하는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하응은 인생 첫 집밥에 도전하며 자기 삶과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정진영이 '아버지의 집밥'에서 하응 역을 맡았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정진영이 '아버지의 집밥'에서 하응 역을 맡았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정진영은 극 중 캐릭터와 비슷한 또래라 연기하며 공감되는 지점도 있었다. 그는 "수염도 덥수룩하고 딱 달라붙는 내복에 배 나온 모습이 내 나이 또래의 본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하응은 뻔한 사람이에요. 그저 열심히 살아서 가족을 부양하는 게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남성이죠. 아버지가 처한 상황과 조건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인 것 같아요."

정진영은 인물과 더불어 작품 자체에 대한 애정도 컸다. 그는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볼 때 낯설어한다"며 "연기상의 허점이 보일 때도 있고 '저게 나인가?'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촬영하면서도 그렇고,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인물과 투명하게 감정이 교류되는 느낌이었어요. 친구들한테도 '너희가 다 좋아할 이야기'라고 말해뒀죠."
'아버지의 집밥'이 세로 형태로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상영한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아버지의 집밥'이 세로 형태로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상영한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낯선 형식의 작품에 선뜻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이야기뿐 아니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이준익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정진영은 영화 '황산벌', '왕의 남자' 등으로 이준익 감독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다. 심지어 '아버지의 집밥'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다른 작품을 찍고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병행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지가 컸다.

"이준익 감독과 작업하면 재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 감독도 숏드라마에 처음 도전했는데 늘 새로운 걸 하는 감독이에요. 그래서 앞으로는 또 뭘 하게 될까, 어떤 도전을 할까 궁금하네요."
정진영이 '아버지의 집밥' 현장 비하인드를 밝혔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정진영이 '아버지의 집밥' 현장 비하인드를 밝혔다. / 사진제공=레진스낵
영화는 가족 이야기를 다룬 만큼 손때가 묻은 가정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다. 이에 실제 촬영도 빈집을 활용했다고. 숏드라마 특성상 저예산으로 진행됐기에 "사실 화장실에 물도 안 나오고 조리 시설도 안 돼 있었다"며 "푸드스타일리스트도 없기 때문에 연출부가 옆 방에서 '부루스타'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예산이 적어서 그랬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더 집밥 같기도 했죠. 여러 세트장도 가봤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아버지의 집밥'은 세로 형태 그대로 극장에 걸린다. 정진영은 "'세로로 만들어야겠다'며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숏폼인 작품"이라며 "그게 극장 밖으로 나온 게 기적이다. 세로형 영화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 것도 신기한 거다"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즐기실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데 원래 제한된 공간에서 보실 수 있는 이야기를 좀 더 큰 열린 공간으로 가져왔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이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박의진 텐아시아 기자 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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