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선이 '꼬꼬무'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 사진=텐아시아DB
윤유선이 '꼬꼬무'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 사진=텐아시아DB
배우 윤유선이 이웅평 전 공군 대령의 생애와 이른 죽음을 접하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이 공개됐다. 이날 온앤오프 효진, 청하, 윤유선이 이야기 친구로 출연했다.

이웅평은 북한 공군 대위로 복무하던 중 1983년 2월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비행 훈련 도중 편대를 이탈해 레이더망을 피해 남쪽으로 향했다. 수도권에 대공 경계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와 마주한 이웅평은 항복 의사를 표시한 뒤 수원 비행장에 착륙했다.

이웅평이 귀순을 결심하는 데에는 휴가지에서 발견한 라면 봉지가 영향을 미쳤다. 봉지 뒷면에 적힌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은 즉시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남한 사회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여기에 친척 문제로 아버지가 숙청당하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졌다.
3일 '꼬꼬무'가 방송됐다. / 사진=SBS
3일 '꼬꼬무'가 방송됐다. / 사진=SBS
남한에 도착한 이웅평은 "북한의 비밀을 폭로하러 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당시 소련의 주력 전투기였던 미그기와 북한 군사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이웅평에게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웅평은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임관했다.

귀순 이후 이웅평은 전국을 돌며 안보 강연에 나섰다. 한 해에만 900회가 넘는 강연을 소화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다. 암살과 독극물 테러에 대한 우려 속에서 생활했고 국가 기관의 감시도 받았다.

이후 이웅평은 과외 교수의 딸이었던 박선영 씨와 결혼했다. 박씨는 신혼집에 설치된 도청 장치를 직접 제거하고 보안사령관을 찾아가 항의했고, 이후 부부를 향한 감시도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웅평은 다른 귀순자들의 정착을 돕는 일에도 나섰다. 1987년 김만철 씨 일가가 대만으로 이송됐을 당시 정부의 요청을 받고 현지로 향해 이들의 한국행을 설득했다. 귀순 군인과 전향한 간첩 등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생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윤유선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용감하다"고 말했다.
3일 '꼬꼬무'가 방송됐다. / 사진=SBS
3일 '꼬꼬무'가 방송됐다. / 사진=SBS
그러나 이웅평은 1997년 간경화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내 박씨의 노력 끝에 간이식 수술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수술을 앞두고 "통일을 못 봤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건강을 되찾은 뒤에도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마음의 짐은 계속됐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누나 등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죄책감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 당시 받은 15억여원의 보상금 역시 통일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남겨둔 채 사용하지 않았다.

이웅평은 결국 2002년 병원으로 옮겨진 뒤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윤유선은 "너무 허망한 죽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세윤 텐아시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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