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이 영화 '경주기행'에 출연한다. / 사진=텐아시아DB
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이 영화 '경주기행'에 출연한다. / 사진=텐아시아DB
복수극의 얼굴을 한 가족 여행기, 서늘한 스릴러 위에 피어난 유쾌하고 따스한 블랙코미디다. 영화 '경주기행'(감독 김미조)은 막내딸을 앗아간 가해자를 향해 칼을 품고 떠난 네 모녀의 여정을 담아낸다. 무거울 법한 복수 서사를 엉뚱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한국형 소동극으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경주기행'은 막내딸 경주를 잃은 엄마 옥실(이정은 분)과 세 딸 장주(공효진 분), 영주(박소담 분), 동주(이연 분)가 경주로 향하며 시작된다. 겉으로는 오랜만의 단란한 가족 여행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출소한 가해자를 직접 단죄하려는 것. 어설프고 기묘한 살인 계획을 품은 네 모녀의 여정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맞닥뜨리며 위태로운 긴장과 웃음을 오간다.
영화 '경주기행'이 8월 26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이 8월 26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장르의 이음새다. 막내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비극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영화는 섣불리 신파로 빠지지 않는다. 복수라는 살벌한 목표와 어딘가 어설픈 모녀들의 모습이 충돌하며 터져 나오는 위트가 일품이다.

마음 약해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던 이들이 품은 살벌한 계획은, 툭툭 터져 나오는 순박함과 엉뚱함으로 무서운 긴장감을 녹인다. 서늘함과 따스함, 스릴러와 휴먼 코미디를 유려하게 오가는 한국식 블랙코미디의 진수가 돋보인다.

네 배우의 연기 합은 실제 한 가족을 보는 듯 어우러진다. 막내의 비극 앞에 삶이 산산조각 난 엄마 옥실 역의 이정은은, 텅 빈 눈빛 뒤에 번뜩이는 칼날을 품고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이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의 세 자매 공효진, 박소담, 이연은 투닥거리면서도 막냇동생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는 끈끈한 연대로 핏줄의 온도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여정에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 삐걱대기도 하지만, 막냇동생을 잃은 비통함만큼은 똑같이 공유하며 진한 가족애를 완성한다.

모녀의 복수 대상인 가해자 역의 변요한은 특별 출연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큰 존재감을 보여준다. 노개런티로 합류한 그는 의뭉스럽고 잔혹한 면모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절대악의 섬뜩한 얼굴 뒤 나약한 인간의 바닥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없어선 안 될 '강력한 대척점'을 완성한다.
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 엄마와 세 딸이 막내를 죽인 가해자를 밧줄로 제압하고 있다.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속 한 장면. 엄마와 세 딸이 막내를 죽인 가해자를 밧줄로 제압하고 있다.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결말의 명확함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모호한 은유나 찜찜한 여운 대신, 딱 떨어지는 '닫힌 결말'을 택해 관객에게 해소감을 안긴다. 비극을 동력 삼아 떠난 여행의 끝에서 모녀들이 마주하는 종착지는 명료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제목 '경주기행'에 담긴 이중적 의미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극 중 수학여행지 경주에서 살해당한 막내의 이름이 바로 경주이며, 남겨진 모녀들이 향하는 목적지 역시 경주다. 여기에 여행을 뜻하는 기행과 모녀들의 기이한 행동을 뜻하는 기행의 중의적 의미가 절묘하게 맞물린다. 비극의 공간이자 딸의 흔적을 쫓는 여정을 언어유희로 비틀어낸 센스가 돋보인다.

'경주기행'은 장르의 경계를 유쾌하게 비틀며 복수극마저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품어낸 작품이다. 서늘한 복수극 안에 온기 어린 가족 서사를 조화롭게 안착시키며, 독특한 톤과 명확한 해소감을 원하는 관객을 만족시킨다. 오는 26일 개봉.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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