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더욱 난처한 이유는 친일 문제가 그동안 자사 콘텐츠에서 여러 차례 비중 있게 다뤄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방송된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2' 2회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 진이수(안보현 분)를 노린 '연쇄 사제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로 등장했다. 진이수와 주혜라(정은채 분)가 이들을 일망타진하며 통쾌한 응징을 선사한 가운데, 해당 장면은 방영 직후 불거진 하영의 논란과 맞물리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2019년 방송된 드라마 '열혈사제'에서도 친일파 집안이라는 설정은 악인의 면모를 부각하는 장치로 쓰였다. 극 중 '구담구 카르텔'의 일원인 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분)는 대대로 친일을 해온 집안의 후손으로 그려졌다. 특히 김해일(김남길 분)이 "대대로 경찰 집안은 무슨, 대대로 친일파잖아. 토착왜구"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최근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재조명받고 있다.
SBS의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들도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친일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명해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은 당시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알기 쉽게 풀어내며 역사적 의미를 짚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센인 인권침해를 다룬 '꼬꼬무' 소록도 편은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에 이어 과거 조부의 국립소록도병원 근무 이력까지 알려지면서 회자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이 하영 본인의 범죄나 행위가 아니라 증조부의 과거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제작진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하영이 방송에서 직접 증조부를 언급한 내용과 이후 대응에 대해서는 설명할 책임이 있지만, 증조부의 행적 자체를 후손인 하영에게 그대로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족사를 이유로 배우의 작품 출연 여부까지 결정할 경우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SBS는 이미 상당 부분 제작된 작품을 어떻게 보호할지, 배우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함께 작품을 만든 동료 배우와 제작진의 피해는 어떻게 최소화할지 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친일 문제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온 SBS가 복잡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그동안 견지해온 태도를 생각하면 논란을 외면하기 어렵지만, 증조부의 행적을 이유로 하영에게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예상치 못한 딜레마에 놓인 SBS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주원 텐아시아 기자 pjw0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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