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증조부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면서 SBS도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그동안 드라마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친일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뤄온 가운데, 이번에는 신작 드라마의 주연 배우를 둘러싼 가족사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근 SBS 콘텐츠 속 친일파를 비판하는 장면들까지 온라인에서 다시 회자되면서 공교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친일파 비판' 단골 소재였는데…SBS, 하영 증조부 논란에 진퇴양난 [TEN스타필드]
최근 하영은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알려지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공식 사과했지만 싸늘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불똥은 차기작인 SBS 새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로 번졌다. 이제훈과 하영이 주연을 맡은 '승산 있습니다'는 내년 2월 방송을 목표로 이미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논란 직후 "사안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히며 하영의 하차 여부를 두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SBS가 더욱 난처한 이유는 친일 문제가 그동안 자사 콘텐츠에서 여러 차례 비중 있게 다뤄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방송된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2' 2회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 진이수(안보현 분)를 노린 '연쇄 사제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로 등장했다. 진이수와 주혜라(정은채 분)가 이들을 일망타진하며 통쾌한 응징을 선사한 가운데, 해당 장면은 방영 직후 불거진 하영의 논란과 맞물리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2019년 방송된 드라마 '열혈사제'에서도 친일파 집안이라는 설정은 악인의 면모를 부각하는 장치로 쓰였다. 극 중 '구담구 카르텔'의 일원인 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분)는 대대로 친일을 해온 집안의 후손으로 그려졌다. 특히 김해일(김남길 분)이 "대대로 경찰 집안은 무슨, 대대로 친일파잖아. 토착왜구"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최근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재조명받고 있다.

SBS의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들도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친일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명해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은 당시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알기 쉽게 풀어내며 역사적 의미를 짚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센인 인권침해를 다룬 '꼬꼬무' 소록도 편은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에 이어 과거 조부의 국립소록도병원 근무 이력까지 알려지면서 회자되기도 했다.
'열혈사제'와 '재벌X형사2'에서는 친일파가 빌런으로 등장했다. / 사진=SBS 유튜브 영상 캡처
'열혈사제'와 '재벌X형사2'에서는 친일파가 빌런으로 등장했다. / 사진=SBS 유튜브 영상 캡처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하영이 '승산 있습니다'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촬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배우를 교체할 경우 제작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고 추가 제작비 부담도 뒤따르는 탓에 SBS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이 하영 본인의 범죄나 행위가 아니라 증조부의 과거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제작진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하영이 방송에서 직접 증조부를 언급한 내용과 이후 대응에 대해서는 설명할 책임이 있지만, 증조부의 행적 자체를 후손인 하영에게 그대로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족사를 이유로 배우의 작품 출연 여부까지 결정할 경우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SBS는 이미 상당 부분 제작된 작품을 어떻게 보호할지, 배우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함께 작품을 만든 동료 배우와 제작진의 피해는 어떻게 최소화할지 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친일 문제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온 SBS가 복잡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그동안 견지해온 태도를 생각하면 논란을 외면하기 어렵지만, 증조부의 행적을 이유로 하영에게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예상치 못한 딜레마에 놓인 SBS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주원 텐아시아 기자 pjw0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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