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역사특집 홍위, 노산, 단종-왕의 이름을 찾아서' 편으로 꾸며졌다. 원년 MC 장항준 감독이 일일 MC로 나섰고, 그룹 프로미스나인 이채영과 가수 적재가 리스너로 함께해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 속에서도 단종을 향한 절개를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꼬꼬무’는 2049 시청률 1.1%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교양·예능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이야기는 1452년 5월 14일, 조선의 5대 임금 문종이 39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시작됐다. 훈민정음 창제에 힘을 보탰을 뿐 아니라 측우기를 발명하고 최첨단 신무기 화차 개발을 이끈 '준비된 군주'의 이른 죽음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한명회의 책략을 등에 업고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키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고명대신 김종서를 비롯한 정적들을 제거한 뒤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영의정과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겸직하며 실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상황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12·12 군사반란'을 떠올리게 했다.
1455년, 수양대군의 전횡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희생을 막고자 했던 15세 단종은 계속되는 압박에 결국 옥새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후 수양대군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로 즉위했다.
그러나 세조의 압박에도 단종을 향한 충신들의 절개는 꺾이지 않았다. 집현전 출신 성삼문과 박팽년 등은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밀고로 붙잡혀 혹독한 신문을 받았다. 불에 달군 인두로 몸을 지지는 고문 속에서도 훗날 '사육신'으로 불린 이들은 세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팽년은 세조에게 올린 공문서에 '신하 신(臣)' 자를 쓸 때마다 획 하나를 빼 '클 거(巨)' 자로 적은 사실까지 밝혀지며 세조의 분노를 샀다.
목숨을 건 저항에 리스너 이채영은 "그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하려고 애쓰는 게 보인다"며 안타까워했고, 적재는 "나 같으면 못 했을 것 같다. 용기가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결국 사육신은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지는 비극을 맞았다.
유배지에서도 비극은 이어졌다. 경상도 순흥에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계획이 발각되며 사약을 받게 된 것. 금성대군은 마지막 순간에도 세조가 있는 한양이 아닌 단종이 있는 영월을 향해 절을 올리며 생을 마감했다.
결국 단종은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세조실록'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기록됐지만, 다른 문헌에는 세조의 명으로 사사됐거나 타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의 시신은 강가에 버려졌고, 역모죄에 연루될 것을 두려워한 탓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안장한 뒤 자취를 감췄다. 이후 영월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몰래 묘를 돌봤고, 241년이 지난 숙종 때 비로소 '단종'이라는 묘호를 되찾았다. 훗날 고종은 엄흥도에게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단종의 치세는 조선 왕조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기로 남아 있다. 장항준은 단종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삶은 한마디로 '외로움'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장현성은 "욕망도 권력도 좋지만, 결국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며 권력 다툼 속에서도 빛난 충의의 의미를 되새겼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은 "단종을 연민하고 세조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약자가 억울하게 희생되는 역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윤 텐아시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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