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이 '호프'에서 범석 역을 맡았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황정민이 '호프'에서 범석 역을 맡았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호프'는 영화 팬들이 기대하는 나홍진 특유의 세계관과 연출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도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을 이끈다. 다만 156분의 긴 러닝타임을 몰입도 있게 끌고 갔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강렬한 장면과 독창적인 설정은 여전하지만, 호흡이 길어지는 구간에서는 아쉬움이 따른다.

'호프'는 가상의 시골 마을 호포항에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마을로 향한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참담한 광경을 목격한다.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 잔인하게 죽어있는 사람들, 이따금 들리는 괴성으로 범석은 장총 하나만 든 채 덜덜 떨면서 정체 모를 존재를 쫓는다.

범석이 마주하는 실체는 외계인이다.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 존재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 돼서야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을 닮았지만 기괴한 외형과 움직임,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은 관객을 단숨에 얼어붙게 한다.
'호프'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호프'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나홍진 감독이 앞서 '곡성'(2016)을 선보였을 당시, 관객들의 호불호는 갈렸다. 많은 부분을 관객의 상상과 해석에 맡겼기 때문이다. '호프' 역시 그렇다. 다만 전작에 비해 훨씬 쉽고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전히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진입장벽은 한층 낮아졌다는 인상을 준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배치한 유머는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 외계인과의 액션 장면이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외계인의 체급 차이는 압도적이다. 아무리 총을 쏴도 죽지 않는 그들 앞에서 관객은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액션에서 오는 통쾌함보다는 배우들이 얼마나 고된 촬영을 했을지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일방적인 싸움이 이어진다.

황정민은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인간적인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외계인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외계인에게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도 눈빛으로 실감 나게 표현한다.

정호연은 범석을 돕는 순경 성애 역을 맡았다. 뛰어난 운전 실력과 총기 사용 능력을 갖춘 성애는 위급한 상황에 상사인 범석에게 거침없이 할 말을 쏟아내며 웃음을 준다. 정호연은 최근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흥분한 탓에 준비한 것보다 톤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종 후시 녹음에서도 그 톤을 유지하며 긴박함을 살렸다. 조인성은 호포항의 청년 성기 역을 맡았다. 그는 돈에 욕심이 있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면서도 겁도 많고 인간적인 인물을 표현했다. 후반부 액션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호프'의 한 장면. 외계인을 쫓는 주인공의 모습이 반복된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호프'의 한 장면. 외계인을 쫓는 주인공의 모습이 반복된다. / 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아쉬운 부분은 초반 전개다. 황정민이 약 1시간 가까이 황정민이 외계인을 쫓는 동안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인의 모습이 지나간다. 또 외계인을 쫓던 인물들도 황정민 앞에서 희생되는 장면도 반복된다. 마을의 참상을 보여주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순간의 충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는 읽힌다. 하지만 같은 패턴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리듬이 처지는 느낌을 준다.

후반부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외계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이들의 서사와 감정을 설명하려 한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존재의 배경을 드러내며 감정선을 만들려는 시도지만,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다. 오히려 그동안 유지해 온 긴장감과 몰입을 깨는 요소로 작용한다. 나홍진 감독은 해당 장면을 두고 에필로그 같은 시퀀스라고 설명했지만, 극 안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인상을 남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외계인이 무엇을 원했고, 굳이 왜 그렇게 많은 인간을 희생시켜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런 해석의 여백은 나홍진 감독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독창적인 세계관과 강렬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15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다소 길게 체감된다. '호프'는 나홍진의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지만, 조금 더 압축했다면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남는다.

박의진 텐아시아 기자 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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