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주인공인 배우 한지민. / 사진=텐아시아DB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주인공인 배우 한지민. / 사진=텐아시아DB
《김지원의 까까오톡》
까놓고, 까칠하게 하는 오늘의 이야기.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이슈를 까다로운 시선으로 비평합니다.


드라마 제목만 12자…'건물주·로또·불륜' 검색 최적화 시대의 '제곧내' 전략[TEN스타필드]
한때 온라인에서는 '제곧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뜻이다. 요즘 드라마도 '제곧내'가 유행이다.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제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보려고 한다. 길이가 길고 서사화됐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포스터. / 사진제공=JTBC, tvN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포스터. / 사진제공=JTBC, tvN
티빙이 발표한 3월 23~29일 주간 콘텐츠 순위에 따르면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이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이라는 제목에는 드라마의 서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주인공 이의영(한지민 분)은 34살에 여전히 인생의 짝을 찾지 못한 여성으로, 자만추가 쉽지 않은 나이와 현실 상황에 결국 소개팅에 나선다.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현대 미혼 남녀들의 연애를 다루는 것이다.

드라마 부문 및 종합 순위 2위를 지킨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제목만 12글자다. 제목만으로도 주인공이 건물주이고, 건물주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생계형 건물주 기수종(하정우 분)이 소중한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가짜 납치극에 가담하며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제작 중인 김혜수 주연의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준혁 주연의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방영 예정인 안효섭 주연의 '오늘도 매진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문장형, 설명형, 서사형 제목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한 '대장금'(2003~2004)과 주인공 이름에 설명까지 더한 제목을 붙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 사진제공=MBC, ENA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한 '대장금'(2003~2004)과 주인공 이름에 설명까지 더한 제목을 붙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 사진제공=MBC, ENA
시대별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제목이 점차 길어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전후의 드라마 제목은 함축적인 명사형이 대세였다. 'M', '모래시계', '청춘의 덫', '허준', '대장금'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인물이나 극 중 설정이 포함되기 시작한다. '올인', '풀하우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 등 구체적 내용을 유추하긴 어렵지만 극의 분위기나 배경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시적이고 긴 호흡의 제목이 등장하며 변화의 전조를 알렸다.

2020년대에는 제목의 장문화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ENA 최대 흥행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올초 넷플릭스 TOP10 비영어쇼 1위를 기록한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제목이 거의 10자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선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제목은 이제 작품의 예술적 얼굴을 넘어, 수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시청자의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섬네일' 역할을 한다. 제목만으로도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제공하고, 얻을 수 있는 재미의 종류를 시청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해 선택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드라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의 출연자 김재철, 조여정, 김혜수, 김지훈. / 사진제공=쿠팡플레이
드라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의 출연자 김재철, 조여정, 김혜수, 김지훈. / 사진제공=쿠팡플레이
OTT 시대의 도래는 이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수백 개의 작품이 나열된 플랫폼 환경에서 시청자의 '3초'를 낚아채기 위해 자극적이고 개성 있는 제목이 필요한 것. 특히 '건물주', '로또', '불륜', '미혼남녀' 등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많한 단어들을 배치해 시선을 붙잡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단어들은 검색 키워드도 된다. 알고리즘 노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검색 최적화까지 노릴 수 있는 마케팅적 선택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웹툰과 웹소설 기반 드라마가 급증한 것도 드라마 제목 장문화에 한몫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어쩌다 발견한 하루' 등이 그 사례다. 원작 플랫폼에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팬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장르적 선명성을 노출하려는 의도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문장형 제목은 이제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는 이런 재미를 줄 거야'라고 외치는 확실한 영업 수단이 됐다. 함축의 미학이 사라진 자리를 '직관의 경제학'이 채우게 된 것이다. 김연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추상적인 단어형 제목보다는 서사가 담긴 장문형 제목을 통해 드라마의 정보 일부를 제공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전략"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긴 제목이 세분화된 타깃팅을 할 수 있기에 관심 분야가 일치하는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관심 분야가 불일치하는 시청층에게는 아예 소구되기 어렵다는 단점도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