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 분)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에 휘말린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고군분투를 담은 코미디.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나 영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던 이 작품의 영화화 작업이 본격화된 건 2022년이 돼서다. 작품의 제목도 '2시의 데이트'에서 최종적으로 '악마가 이사왔다'로 바뀌었다. 이 감독은 "'2시의 데이트'라는 '숫자 2'가 들어간 제목 때문에 파일 정렬을 하니 항상 맨 위에 올라가더라. 계속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참 뒤에 열어 보니 세월이 지나며 숙성됐는지,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 너무 달랐다. 당시 영화를 좋아하던 학생으로서 과감함과 실험성이 있더라.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이었다"며 웃었다. 또한 "데뷔하고 몇 년 뒤 꺼내 보곤 '지금의 내가 정화하고 정제해서 사람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유지하되 처음부터 다시 썼다.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만 빼고 가족 구성부터 시작해 모든 걸 바꿨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검색이 잘 안되더라.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제목에 내러티브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2시의 데이트' 앞에도 '새벽에'라는 괄호가 빠져있는 거였다. 낮 2시를 생각했다가 새벽 2시라는 반전의 내러티브를 주고 싶었던 거다. 바뀐 제목인 '악마가 이사왔다'를 선택한 건, 일단 영화가 선지네가 이사 오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사 온다는 게 물체가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보고 감정이 흔들리며 '쿵'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극 중 선지는 음식을 우걱우걱 먹고 한강 물에 뛰어드는 등 천방지축이다. 난감했을지도 모를 촬영에 대해 이 감독은 "음식을 먹는 도중에 입에 넣은 채로 말하고 이런 연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데 윤아 씨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해줬다. 화면에 나오면 저렇게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장면들도 잘해줬다"며 고마워했다. 이어 "시키진 않았지만 은근히 압박했던 거 같은데, 임윤아 배우도 즐겁게 촬영해줬다"며 웃었다.
임윤아가 캐스팅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물음에 이 감독은 "느려도 인연과 정도를 찾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시기, 타이밍이 있다는 거다. 잘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해줄 거라는 80% 이상의 심적 확신은 있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임윤아는 촬영 때문에 케이크를 10개 이상 먹었다고. 이 감독은 "시폰이 부드러워서 먹으니 이에 낄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윤아 씨가 잘 먹어줬다"며 고마워했다.

이 감독은 극 중 선지와 길구의 로맨스 분량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선배 감독들이 하는 말이, 안 보여주면서 잘 설명하는 게 잘하는 거라더라.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를 일차원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행복하게 살 거다'라고 담으면 보는 분들의 상상을 더 자극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언젠가 키스신을 찍을 거다"라고 의지를 다져 웃음을 안겼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 코미디, 로맨스, 휴머니즘 등 다양한 요소를 담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 감독은 "'엑시트'는 두 명이 생존을 위해 달려가는 얘기였다. 청춘이 어디로 갈지 모르며 내달리는 얘기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여정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첫 작품과 비슷한 점은 길을 찾고 여정을 가는 사람들의 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길을 잃고 가다가 우연히 만난 두 인물이 같이 걷게 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남자 주인공이 백수라는 점도 '엑시트' 때와 공통점이다. 이 감독은 "이제는 백수를 그만해도 되지 않나 싶다. 아니면 백조를 할 수도 있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다음 작품도 길을 찾고 여정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식으로도 해보고 싶다. 감독은 자신이 계속 생각하고 인생에서 철학적으로 고민했던 점들을 작품에 담게 된다"고 얘기했다. 또한 "제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수준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렇다고 제가 갑자기 전기톱으로 사람을 써는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오는 13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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