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12 군사반란 다룬 '서울의 봄'
심박수 챌린지부터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
'서울의 봄' 흥행 이유는 무엇?
심박수 챌린지부터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
'서울의 봄' 흥행 이유는 무엇?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라는 새싹은 관객들의 끊이지 않은 발걸음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지금 흥행 러쉬 중이다. 12월 5일 기준,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 334명을 기록했다.
2023년 한 해 손익분기점(BEP)을 넘은 한국 영화가 5편('서울의 봄' 포함/손익분기점 460만명)이라는 수치를 되돌아본다면, '서울의 봄'의 고공행진하는 관객 수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도시3'(누적 1,068만명/손익 180만명), '밀수'(누적 514만명/손익 400만명), '잠'(누적 147만명/손익 80만명), '30일'(누적 200만명/손익 160만명)이었기 때문이다. 침체된 한국 영화의 상황 속에서 '서울의 봄'의 흥행은 반가울 따름이다.
하물며 '서울의 봄'과 관련한 신기한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의 씁쓸한 역사를 다루는 '서울의 봄'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일명 심박수 챌린지(심박수를 잴 수 있는 스마트워치로 영화 전후의 심박수를 체크해보는 챌린지)를 하기도 한다고. 극장을 들어가기 이전과 이후의 심박수 변화를 측정하며, 141분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얼마나 분노를 유발했는지를 체크하는 포인트라고 하니 '서울의 봄'이 얼마나 입소문이 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간 한국 영화 위기론으로 덜컹거렸던 영화계에서 피어난 '서울의 봄'의 무엇이 흥행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POINT 1. 현대사를 바꾼 '1979년 12·12 군사 반란'이란 씁쓸한 역사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리소문없이 벌어진(당시, 시민들은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있던 탱크들을 보고 영문을 모르기도 했다고) 12·12 군사 반란으로 인한 결과는 이러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가 국군을 장악했고, 국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요구는 거세졌다. 이에 반란군들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이는 대규모 집회로 번져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계엄군들은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또한, 6월 9일 연세대학교의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던 사진을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인 정태원 기자가 담아내고 기사로 보도되면서, 6월 10일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됐다. 당시, 정권은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6.29 선언이 발표했고 대한민국은 지금의 직선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12.12 군사 반란이 가져온 파장을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굵직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12월의 그날이 무엇을 변화시켰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POINT 2. 전 연령층의 고른 예매율과 유독 눈에 띄는 20·30세대의 관람


윤성은 영화 평론가는 '서울의 봄'의 흥행에 관련해 "코로나19 여파가 어느 정도 있었던 '남산의 부장들'(2020)이 흥행한 사례를 보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꾸준했다. 12·12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교과서에서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상업 영화에서 좋은 소재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20·30대들은 보지 않을 텐데 '서울의 봄'은 신군부를 막을 수 있을 듯 없을 듯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 기성세대는 직접 그 시대를 겪었기에 익숙하지만,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젊은 관객들은 가까운 과거임에도 잘 알지 못하는 현대사의 이야기라 더 분노하게 되는 것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심박수 챌린지, 각종 밈을 생산해내는 20·30세대가 '서울의 봄' 흥행 및 입소문의 주요한 요인이 된 까닭은 그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역사를 스크린을 통해 만나면서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POINT 3. 잿빛으로 물든 새벽, 숨 막히는 긴박감을 재현한 김성수 감독의 연출력

평균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누적 관객 수 723만명을,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누적 관객 수 1,218만명을, 1979년 10.26 사건을 일으킨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누적 관객 수 475만명을 모은 것만 봐도 관객들이 한국의 현대사에 가지고 있는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느냐를 알 수 있지만, '서울의 봄'의 흥행을 단순히 역사물을 다룬다는 것으로만 요약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성수 감독은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며 종결되기까지의 9시간가량의 시간을 141분의 러닝타임 안에 밀도 있게 압축해낸다. 절묘한 교차 편집은 '서울의 봄'의 긴장감을 한층 높이는 방아쇠가 되고,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 질감을 담아낸 카메라는 피부를 느낄 정도의 생생함을 높이며, 사건이 변화됨에 따라 시시각각 태세를 전환하는 전두광을 따르는 주동자들의 현실적인 연기 앙상블은 역사라는 정해진 기록에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피어오르게 만든다.

어쩌면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감기'(2013), '아수라'(2016)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김성수 감독의 노하우가 '서울의 봄' 안에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열아홉 살에 집이 한남동이어서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될 때의 총소리를 들었다. 그 일이 무슨 일인지 몰랐고 나중에 30대 중반이 되어서 알게 됐다. 당혹스럽고 놀라웠다. '이렇게 쉽게 우리나라 군부가 불과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내렸다니'라는 생각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44년이 지났는데,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 현대사의 운명적인 전환점이 되어있는지를 다루는 것이 화두였다"라고 밝힌 김성수 감독의 말처럼 '서울의 봄'은 무엇이 현대사를 이렇게 바꾸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더욱 흥행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 아닐까 싶다.
POINT 4. '서울의 봄' 이후, 실제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상황

일례로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사령관과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티브가 된 김오랑 소령이 그러하다. 실제로 장태완 사령관은 12.12 군사 반란 이후, 반란군들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서빙고에서 45일간 조사를 받은후 수도경비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진호 소령의 경우, 자신의 사령관(정병주)을 지키다가 교전 중에 사망했다. 사망 당시 계급은 소령이었으나 1990년대에 이르러 중령으로 추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실존 인물들을 찾아보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봄'의 흥행은 단순히 기록이나 수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라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서울의 봄'이라는 하나의 씨앗은 가슴 시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새겨야만 하는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되지 않을까. 그게 어떤 형태든 말이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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