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2005년, 여배우로서 한창 꽃피우던 스물 네 살의 나이에 동료 배우 연정훈과의 결혼을 발표하며 수많은 남고생, 예비역, 싱글 남성들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게 했던 한가인이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이상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외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화사한 얼굴이 아니라 당차고 야무진 캐릭터를 내세웠던 MBC 이나 에서처럼 그는 교태로운 여인이라기보다 싹싹한 여자친구에 가깝다. 근 3년의 공백기 동안 “연기하지 않을 때는 집안일 하면서 정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편이에요. 그랬더니 시간이 흐르는 걸 못 느낄 만큼 바쁘던데요?”라는 고백처럼 카메라 밖에서의 한가인 역시 ‘여신’이나 ‘만인의 연인’이 아니라 이십대 후반 보통 여자들과 별다르지 않다. 타고난 성격인지 이른 사회생활 때문인지 또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예의바른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일 뿐이다.
하지만 해외 촬영을 나가며 아침저녁으로 녹음기를 붙들고 살며 “쿡 찌르면 저절로 대사가 나올 정도로” 일본어 대사를 연습하는 반듯한 모범생에게도 의외의 욕심은 있는 법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SBS 에서 한가인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크리스탈처럼 예쁘고 깨끗한 이미지”( 이형민 감독)를 버리고 재벌가 입성을 꿈꾸는 야심찬 아트 컨설턴트 문재인 역을 맡았다. 화장품이나 가전제품 광고에서 늘 순백의 이미지였던 그가 세속적 욕망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변신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가인이 추천한 음악들이 오래전 첫사랑이나 이별 후 잊지 못한 연인을 생각하며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라는 점 역시 재미있다. “제 나름대로 ‘어디선가 이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라는 부제를 달아 봤어요. 015B의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라는 곡에서 따온 건데, 누구나 그런 추억의 대상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아요.”

96년 가을, 길거리와 라디오 신청곡 리스트를 온통 뒤덮었던 ‘어떤가요’는 당시 무명의 대학생이었던 이정봉을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등극시켰다.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담담하면서도 애절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는 이 곡이 발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명곡으로 남게 만들었다. 한 곡의 노래에는 그 시대의 정서 역시 함께 담기는 만큼 리메이크가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화요비가 2002년 자신의 세 번째 앨범에 수록한 버전 역시 깊이 있는 보컬이 매혹적이다. “밤에 혼자 드라이브할 때 자주 듣는 곡인데 가사를 한 마디씩 음미할수록 너무 슬픈 노래에요. 이정봉 씨의 원곡도 좋아하지만 제가 여자이다 보니 같은 여자인 화요비 씨가 부른 곡이 더 애절하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성시경 씨의 목소리 자체를 정말 좋아해서 그분의 노래는 모두 즐겨 듣지만 특히 ‘거리에서’는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감미로운 보컬이 너무 잘 조화된 곡이에요. 아무리 사람들 가득한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도 혼자 이어폰 끼고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음악에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가인의 말대로 성시경은 목소리만으로도 최고의 악기를 지니고 있는 가수다. 2000년대 이후 남성 솔로, 그것도 발라드 가수가 오래 살아남기 힘들어진 가요계에서 그는 근 10년 가까이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은 채 활동해 왔고 대중적으로 보기 드문 스타성을 지닌 음악인이도 하다. 2008년, 6집 를 발표한 뒤 입대했다 지난 5월 드디어 군 복무를 마친 ‘성발라’의 복귀가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컬 김종완과 기타의 이재경, 베이스 이정훈과 드럼 정재원이 모여 1999년 결성한 4인조 모던 록 밴드 넬은 2001년 첫 번째 앨범 < Reflection Of >을 발표했다. 2008년 발표한 4집 < Separation Anxiety >에 수록된 ‘기억을 걷는 시간’과 ‘멀어지다’가 크게 히트하면서 한층 더 대중과 가까워졌지만 ‘Stay’, ‘얼음산책’ 등 그 전의 작업들 역시 중독성 있으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로 꾸준히 사랑받았다. “독특한 보컬과 감성적인 멜로디 때문에 넬의 노래 대부분을 좋아해요. 우울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력이 있거든요. 이 앨범에서는 ‘멀어지다’를 특별히 아끼지만 ‘Fisheye Lens’나 ‘12 Seconds’도 추천하고 싶어요.”

2002년 가을, 여성 솔로 가수 리즈의 데뷔 앨범 타이틀곡 ‘그댄 행복에 살텐데’는 특별한 마케팅이나 물량 공세 없이도 입소문을 타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십대 시절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 캘거리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리즈의 풍부하면서도 처연한 보컬과 이수영의 ‘I believe’, 성시경의 ‘희재’ 등 다수의 발라드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 MGR의 프로듀싱이 만난 결과였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정말 좋아한 곡이었어요. ‘왜 또 생각하니 왜 또 전화기를 보니 / 왜 그 사진은 다시 꺼냈니 / 왜 또 멍해졌니 닮은 뒷모습을 봤니 / 왜 나를 버린 사람 잊지 못하니’ 라는 가사도 헤어진 뒤 혼자 남겨진 사람의 심리를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 ‘추억 만들기’ 中” 故 김현식은 탁월한 보컬이자 작곡가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단어들로 결코 잊을 수 없는 노랫말을 써내는 작사가이기도 했다.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등 수많은 명곡들로 채워진 그의 여섯 번째 앨범이 발표된 지도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감동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그 슬픈 감정을 음미하는 편인데 ‘추억 만들기’는 촬영 다니면서 무한 반복하던 곡이에요. 김현식 씨의 담담한 듯한 창법과 깊이 있는 목소리, 가사까지 완벽하게 마음을 흔들어놔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라구요.”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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