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트위터, 페이스 북 등으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빨리 여론을 형성한다. 다만, 여론은 야구팀의 조의조차 쉽게 끌어내지 못한다. 비슷한 일은 또 있다. 고려대학교의 세 학생은 술에 취해 쓰러진 동기 한 명을 성추행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SNS에서는 ‘무한 RT’로 그들의 출교를 외친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이유를 들어 조치를 미룬다. 심지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시험 보도록 했다. 여론이 어떻든, 결정권을 가진 집단이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시대. 윤리와 미안함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대신 죄는 다른 사람이 짊어진다. 그럼에도 그 야구팀을 놓지 못하는 팬. 또는 그럼에도 자식이 그 학교에 들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학부모 같은 사람들 말이다.
산 자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이승
주호민은 “경제성장률 6.1%”과 “홀로 살던 노인 사망”이 신문에 나란히 실리는 것이 놀랍지 않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이 오발사고로 죽었다. 승진이 급한 지휘관은 그를 탈영한 것으로 조작한다. 다음 보초 근무자들은 그의 강압에 의해 조작에 가담하게 된다. 때로는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될 처지에 놓이는 시대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실마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있다. 김자홍의 죽음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저승편’은 수없이 많은 죄와 형벌을 펼쳐 놓는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도 저승에서는 혓바닥이 뽑히는 죄가 될 수도 있다. 저승의 기준에서 죄 짓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저승편’을 읽으며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질 수 있을 것이다. 는 마치 처럼 “지옥이 꽉 찰 만큼” 죄 짓는 게 당연해진 한국 사회를 보여준 뒤, 이 모든 죄인들에게 처럼 사후 세계를 보여주며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더 제대로 살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이 시대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유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죄 짓지 않았다고 믿어야 야구도 편히 보고, 대학도 편히 가고, 성공도 편히 할 수 있다. 에서 자신의 죄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반성하는 것이 김자홍 같은 소시민이라는 사실은 슬픈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시민이야말로 죄 없는 세상이어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인정해야 세상은 그나마 지옥이 되지 않는다. 는 우리 모두의 죄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망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외치는 절규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구는 오늘도 계속된다.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볼 것이다. 그러나 신이 보고 있다. 우리를 용서하고, 벌할 신이. 지금은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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