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잇따르는 호평에도 여전히 “제가 연기를 잘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강조하는 서우는 “스크린 안에서의 모습은 일부일 뿐, 그 바깥에는 아직 신인이고 아마추어인 서우가 있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 구르고 깨지고 하는 과정들을 다 빼고 백 번 중에 한 번 잘 한 모습만, 그래서 그 하나하나를 합쳐 놓으니까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제가 보면 ‘어머, 포장을 너무 잘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라며 웃는다. 그래서 연기를 할수록 “연출의 힘, 영화 자체가 갖는 힘이 크다는 걸 느낀다”는 서우가 장르를 불문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들을 이야기한다.

1939년 | 빅터 플레밍
“어릴 때는 비디오로 봤는데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 몇 년 전부터 DVD로 다시 보고 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정말 옛날 영화인데 영상이나 연기, 미술 같은 게 참 세련되고 좋아서 어떻게 그 당시에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해요. 왠지 리메이크되는 게 기다려지고, 만약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된다면? 당연히 저도 하고 싶겠죠. 스칼렛 오하라는 너무나 매력 있는 여자여서 많은 여배우들이 탐낼 텐데, 굉장히 예쁜 사람이라 제가 일단 비주얼 적으로도 많이 부족하지만 메이크업에 좀 의지해서라도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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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조안 첸
“뉴욕에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뉴욕이나 서울처럼 삭막해보일 수 있는 대도시라는 공간에서 따뜻한 감정을 잘 끌어낸 영화 같아요. 위노나 라이더의 귀엽고 깜찍한 매력과 리처드 기어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 같은 게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배우라면 그렇게 자기만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에 나오는 모자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이나 처럼 한국적 정서에 잘 맞는 정통 멜로라서 그런지 보는 내내 펑펑 울었던 작품이에요.”
평생 바람둥이로 살아온 뉴욕의 레스토랑 주인인 윌(리처드 기어)은 50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구속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온 20대 초반의 샬롯(위노나 라이더)과 사랑에 빠지지만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다시 상처받은 샬롯은 그를 떠난다. 옛 연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불치병에 걸린 여자 등 전형적인 멜로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위노나 라이더와 리처드 기어가 보여주는 화학작용이 마음을 흔든다.

2007년 | 한재림
“솔직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영화는 평상시에 즐겨 보지 않아요. 딸만 셋인데 언니들이 외국에 살고 있어서 다 같이 보기가 힘들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가족 영화를 보면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거든요. 는 오랜만에 둘째 언니가 한국에 왔을 때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마음의 준비 없이 같이 보러 갔다가 너무 울어서 다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였어요. 특히 마지막에 송강호 선배님이 혼자 집에서 라면 드시는 장면의 연기가 너무너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송강호와 조폭이라면 대개 를 떠올리겠지만 한동안 충무로를 휩쓸었던 조폭 영화 사이에서 는 독특하게도 중년의 가장인 조직 중간 보스 인구(송강호)의 인생을 조명했다. 조직에서 그만 손을 씻고 가족들과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구의 지난한 고군분투는 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가슴을 때린다.

2005년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인도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아는 분에게 좋은 작품이라는 추천을 받고 몇 개 없는 상영관을 뒤져서 찾아갔어요. 주인공들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캐릭터가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 그들의 흔하지 않은 사랑 역시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어요. 참 여러 가지 ‘향’이 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의 이경미 감독님도 을 재밌게 보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게 참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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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영화라서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던 작품은 아니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두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할 수 있지?’ 하고 굉장히 놀랐어요. 영화에서 여자아이가 높은 곳을 훌쩍 뛰어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와이어나 다른 장치 없이 배우의 신체만을 활용한 것 같아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연기를 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연기만을 보고 지냈다면 그 아이들의 연기가 제 보는 눈을 폭넓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외톨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은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와 친구가 되지만 어느 날부터 마을에서는 피가 전부 사라져 죽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뱀파이어 영화’라고 할 수는 없는 이 기묘한 성장담, 혹은 사랑 이야기는 지난 해 11월 국내 개봉 후 영화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껏 뻗어나갈 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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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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