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 역을 연기한 배우 배성우./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 역을 연기한 배우 배성우./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고민한 만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배성우는 고심 끝에 영화 ‘안시성’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안시성’은 한때 ‘다작요정’으로 불리던 그가 출연 횟수를 줄이고 한 작품에 신중을 기하기 시작할 때 제안 받은 작품이다. 전쟁을 소재로 한 사극인 데다 비교적 익숙한 칼이 아니라 창을 사용해야 하는 액션이 낯설었다. 더군다나 2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다. 책임감이 따르기 마련이다. 극 중 성주 양만춘(조인성 분)의 곁을 지키는 부관 추수지로 통쾌한 액션을 선보인 배성우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안시성’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배성우: 전쟁을 소재로 한 사극은 처음이라 고민을 했다. 하지만 호기심도 있었다. 영화에서 제대로 다룬 적 없는 고구려 역사와 안시성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서 흥미를 느꼈다. 워낙 친한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해서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10. 극 중 추수지의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연기했나?
배성우: 출연한 배우들 중에서 제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지만 추수지의 겉모습도 나이가 많아 보인다.(웃음) 당시 고구려는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을 텐데 살아남았고, 성주와 가장 가까이서 속내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베테랑 전사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10. ‘더킹’에 이어 조인성과 또 호흡을 맞췄다. 사극은 현대극과는 달랐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배성우: 인성이는 주연배우로 큰 영화를 짊어지고 가야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양만춘이란 인물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사실 추수지도 드라마로는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대본에도 충직한 것 외에 드러난 이야기가 없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고구려 시대라 말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부터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까지 고민했다. 또 양만춘, 추수지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서사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배우들끼리 케미를 형성하고자 신경 썼다. 전형적인 톤으로 대사를 하면서도 재미를 위해 최대한 튀지 않는 선에서 엇나가려고 노력했다.

10. 전투장면이 압권이다. 주필산 전투부터 두 번의 공성전, 마지막 토성 전투까지 굉장히 스펙터클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투는?
배성우: 영화는 전투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도 맨 처음 영화를 볼 때 그 부분을 제일 신경 써서 봤다. 20만 대군과 맞서 싸우는 것이 ‘재미’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전투마다 성격이 다르다. 방어를 하는데 해법이 정확하게 명시가 돼 있다. 한 사람이 너무 잘 싸워서 영웅처럼 그려진 것도 아니고, 한 명당 300명을 죽이자는 것도 아니었다. 성이라는 방어체계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쉽게 뚫리지 않는 점이 흥미로웠다. 첫 장면에서 펼쳐지는 주필산 전투가 인상 깊었다. 시작부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10. 외국영화와 비교했을 때 전투장면의 퀄리티에 대해 걱정은 안 했나?
배성우: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제작사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 사석에서 이야기한 적도 있다. “‘반지의 제왕’ ‘트로이’ ‘300’ 등을 본 관객들의 눈이 얼마나 높아졌겠느냐.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하지만 스태프들도 그런 영화를 즐겨 본 사람들이다. 덩달아 눈이 높아졌다. 그들이 만든 시뮬레이션을 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10. 창을 이용한 액션이 인상적이다. 어렵진 않았나?
배성우: 멋있고 재미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자세를 잡는 것도 힘들었다. 칼은 익숙한데 왠지 창은 어색했다. 창술을 가르쳐주는 분들의 자세가 워낙 좋아 어떻게 따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안시성’의 배성우는 “재미를 위해 최대한 튀지 않는 선에서 엇나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영화 ‘안시성’의 배성우는 “재미를 위해 최대한 튀지 않는 선에서 엇나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10. 각 캐릭터들의 액션 장면에서 슬로우모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만화를 보는 느낌이라 흥미로웠는데.
배성우: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건데 진짜 만화같이 보였다. ‘더킹’에 나오는 교통사고 장면에서도 같은 기법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차 하나를 큰 기계로 받아버려서 ‘꽝’ 하면 끝났는데, 이번엔 수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컷을 잡아야 하니 어려웠을 거다. ‘안시성’에서는 로봇암에 초고속 카메라를 설치해 찍었다. 로봇암은 사람이 찍을 수 없는 속도를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비다. 국내에서는 처음 사용했다고 들었다. 액션 장면을 찍을 때 너무 치열하게 움직여서 느린 화면으로 볼 때 표정이 멋있게 나올까 걱정했는데 분장팀과 의상팀 덕도 컸다.(웃음)

10. 남주혁과 김설현 등 젊은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배성우: 너무 좋았다. 함께 연기하는 데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남주혁과 김설현은 이제 스무 살 초, 중반이다. 그 나이 때 나와 비교하면 대견하다. 두 사람 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대단했다. 다만 촬영장에 가기 전 준비는 해도 결정은 해서 가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되면 틀 안에 갇혀버려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0.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였던데.
배성우: 아니다. 저는 나이가 있어서 얌전히 있었다. 박병은이 아재개그로 분위기를 살렸다. 박병은은 짜내는 개그를 하지만 나는 위트 있는 사람이다.(웃음)

10. 한때 ‘다작요정’이라고 불렸다. 얼마 전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에서 말했듯 최근에는 1년에 한두 작품에 몰입한다고 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배성우: 그렇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한다. 역할을 맡았을 때 잘 해내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는 작품인데 의미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관객의 관점에서 ‘재미는 있는데 뭐하러 봤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기만 보여드릴 순 없다. 배우는 작품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중요하다.

10. 예전에는 ‘악역’을 주로 맡았는데 요즘에는 선한 역할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어떤 연기가 더 편한가?
배성우: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을 구분 짓기보다 인물 자체의 매력과 설득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악역을 연기할 때 나쁜 짓을 하는 일이 설득력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봤을 때 무서운 일이 진짜 무섭게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잠깐 등장하는 한 컷을 찍을 때도 고민을 많이 했다. 타고난 배우들은 ‘탁’ 하면 나오는 데 나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제는 한 작품에서 많은 장면을 연기해야 하니 고민의 폭이 넓어졌다. 좀 더 깊이 들어가니 책임감도 생긴다. 연기하는 데 또 다른 즐거움이다.

10. 올 초 방영한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지구대 경위 오양촌 역을 연기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시즌2가 제작된다면 출연할 생각이 있나?
배성우: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과 아직까지 연락을 한다. 그만큼 돈독해졌다. 우리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광수랑 ‘라이브’에 대해 얘기하다가 시즌 2를 다른 사람이 하면 섭섭할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컸다. 출연했던 배우들이 한결같이 ‘라이브’를 찍을 때가 제일 즐거웠다고 말하더라. 촬영하면서 서로 사진도 많이 찍고 술자리에서 OST를 틀어 놓고 울기도 했다. 생각하면 행복하다.

10. ‘명당’ ‘협상’ 등과 한가위 극장가 대전을 펼친다. ‘안시성’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배성우: ‘안시성’ 은 한국영화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고구려를 소재로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은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친분이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비주얼이 정말 멋진 것 같다. 판에 박힌 얘기일 수 있겠지만 모든 영화가 다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을 때 시장도 커지고,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아주실 것 같다. 모두 잘되면 좋겠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