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이제까지 워낙 많은 홀로코스트(대학살) 영화가 만들어졌기에 변별력을 갖기도 그만큼 힘들다. ‘주키퍼스 와이프’(The Zookeeper’s Wife, 감독 니키 카로)에서도 같은 고민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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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럽에서 모이기에 독일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히틀러의 수석 동물학자이자 유전학 전문가인 루츠 헥(다니엘 브륄)도 자빈스키 부부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터졌다.
독일은 유럽에서 처음 정복한 나라인 폴란드를 마음껏 유린했고 귀한 동물들을 베를린으로 가져가겠다는 루츠의 제안을 얀 부부가 거절할 수 없었다. 아끼던 동물들이 끌려가도록 그저 눈뜨고 방치할 수밖에. 희귀 동물이 끌려가고 나면 나머지 동물들은 어떻게 할까? 평범하고 숫자도 많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동물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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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비극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은 그들의 격리 수용이다. 온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을 잡아들여 수용소 안에 몰아넣었다가 때가 되면 아우슈비츠로 이동시키고 거기에는 거대한 소각장이 있어 유대인들을 불태웠다.
얀이 음식물 찌꺼기를 모으려 주기적으로 들어간 수용소 내의 상황은 지옥이었다. 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과 다정한 이웃으로 함께 살았던 기억이 무참히 짓밟히는 경험을 한다. 벽이 둘러쳐진 수용소에 대한 묘사는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비극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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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 설정에 따라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오가는 절박한 상황. 한 치 앞도 예측 못하는 상황 설정이 꽤 훌륭해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주키퍼스 와이프’는 인간과 동물과 야만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또한 결코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며 오히려 비극적인 역사를 보다 비극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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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유전자와 튼튼한 체격을 가진 특별한 인종이 아니라 위험에 빠진 이들을 진심으로 돕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의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동물원에 모여 기쁨을 나누고 폐허를 딛고 재건의 다짐을 하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물론 부부의 친구이자 유대인 동물학자 시몬도 있었다. 희망이 꽃피기 시작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들은 그 숫자를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TV를 켜면 종종 나치 독일의 잘못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TV 시리즈들을 시청하곤 했는데 이 모두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후 승전국들이 아예 고정적으로 나치의 잔혹함을 독일국민에게 일깨우려고 방영 의무를 지운 결과였다고 봄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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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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