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경찰 인사 농단 사태를 다뤘다.

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박건찬 치안감 노트와 이총경 녹취록을 공개했다.

박건찬 치안감의 청와대 비밀노트.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 비밀노트에 총 3차례 등장하는 김모 총경을 찾았다. 박건찬 치안감의 비밀노트는 인사 청탁으로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총경은 박건찬 치안감과 “그렇게 친하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며칠 뒤 그는 스스로 보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부하직원에게 승진을 대가로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건찬 전 청와대경비국장(치안감)의 노트에는 최순실의 이름까지 등장했고 청문회에서도 이 노트가 언급됐다. 의경, 순경 선발 등에 대한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개인의 부정이 넘어 경찰 조직의 비리라는 비판, 그리고 좌절과 체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1월 관련 내용을 방송한 후 경찰청장은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으나 그 결과는 3개월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현직 경찰 신분인 제보자 A는 제작진에게 방송 직후 경찰 고위직들이 자신들의 노트를 서둘러 파쇄했다고 제보했다.

총 151명이 등장하는 노트에는 외부인도 있다. 그러나 외부인사는 관련된 연락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노트에 적힌 현직 경찰은 “간단하게 5분,10분 이야기 했나. 내가 관련된게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황이 보이는 것.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찰청 내 고위간부 인사 전횡은 아무리 증거가 드러나도 결국 덮이는구나. 그런 대단히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그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때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연락을 준 제보자는 “경기XX(경찰청) 총경으로 있는 분인데 XX 장관이 승진에 관련돼 있다는 녹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녹취 파일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거 영등포 경찰서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당시 경정이었던 그는 나이 쉰도 안돼 총경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성공 뒤에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제보자는 세계로컬신문 김정태 편집장이었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그는 1시간 25분 분량의 녹취파일을 듣고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김정태 편집장은 녹취 파일에 대해 설명하며 국방 관련 소식지를 발행하며 정관계 유력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박모씨에 대해 말했다. 이총경의 승진을 도운 인물이라는 것. 또 지금도 현직 장관직에 있는 인물이 이총경의 승진에 연관돼 있다고 믿고 있었다.

표창원 의원은 녹취파일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답답하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연하게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함께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이 분이 연루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소리를 확인하면서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경찰대 4기 출신인 이총경은 현재 한 지방청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찾아갔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개명을 했고 지난해 12월 말 대기발령이 난 상태였다.

제작진은 이에 박여인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으나 공개된 주소지들에서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전화해 이총경과의 관계를 묻자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 고위직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언론계 24년이다. SBS 사장도 안다”면서도 SBS 사장 이름을 대지는 못했다. 다만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제보에 따르면 박여인이 대가없이 이총경에 대해 로비를 한건 내연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총경은 또다른 내연녀가 있었고 박여인은 이총경에게 돈 4천만원과 차를 받았다. 금품이 오갔고 결과적으로 승진도 이뤄졌다.

표창원 의원은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장관에 대해서도 “그런 상황 속에서 장관 이름은 우연일 수 없다. 당연히 어떤 역할을 했고 관계가 있는지 청탁을 들었는지 이 여성이 장관을 팔아 거짓말한건지 조사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 측은 “박여인을 모른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건찬 노트와 이총경 녹취파일을 보면서 절대로 이러한 일들이 독립적인 현상이라 보지 않는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범죄학적으로나 이런 부분들을 썩은 사과 이론이라고 한다. 맨 위에서 썩은 사과가 발견된다면 그 아래는 더 많이 썩어있을 거라 보는게 합리적 추론이다”고 말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단서가 있다. 바로 이총경의 인사청탁 시기와 박건찬 치안감 노트 작성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있었던 두 인사 스캔들은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일까.

박건찬 노트 속에는 151명이 등장한다. 청와대 101경비단 순경에 지원한 인물의 수험번호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박건찬 노트 속 101단 근무를 희망한 이들은 대부분 101단으로 갔다. 문제는 수험번호까지 표시된 인물들이다. 박건찬 치안감의 개입 가능성이 있는 것. 101단에 합격한 인물은 “(박건찬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합격 전이었다”고 밝혔다.

경찰 감사는 대부분 노트 왼편에 적힌 현직 경찰에 집중됐다. 청탁을 해온 이들에 대한 조사는 상대적으로 미비했다. 대통령경호실 차장이었던 박종준도 문제의 중심에 섰다. 박종준 당시 경호차장은 일선 경찰서에 근무 중인 두명의 경찰을 언급했다. 차장의 처조카 사위까지 언급돼 있었다. 박순경은 제작진에게 박건찬 노트를 보고 “처삼촌이 경찰직에 있다. 아마 친분이 있어서 메모해놓은 것 같다. 성함이 박종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이 아닌 2년만에 심사로 승진했다. 박종준 전 차장은 코레일 상임감사직에 올랐다. 그는 홀로 아이를 양욱하는 처조카가 안타까워 박건찬에게 지방척 발령을 문의했을 뿐 인사청탁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박건찬 노트와 김영한 비망록 두군데에 등장한 이모 경감을 비롯해 노트에 이름이 등장한 인물들의 대부분은 “모르는 일”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노트 속 인물들을 추적한 결과 그들은 계급보다 근무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또 박건찬 치안감에게 부탁을 해온 인물들 중에는 그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와 연결고리가 없어보이는 이들의 부탁도 많았다. 그는 자신에게 접수된 모든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업무를 처리하는 듯 느껴질 정도다. 노트를 작성한 진짜 이유는 뭘까.

최순실 전남편 정윤회와 관련된 십상시 문건 파문으로 청와대를 떠났던 전 청와대공직기강 비서관이자 조응천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났다. 그에 따르면 안봉근 전 비서관은 경찰 인사에 관련돼 있었고 또 “2014년 십상시 문건 사건 이후로는 안봉근이 대놓고 못했는데 그걸 우병우(전 민정수석)를 통해서 했다. 점점 힘의 축이 우병우 쪽으로 가서 나중에는 경찰 인사에 있어서 안봉근이 하던 일을 우병우가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이 있는 사람들이 박건찬 당시 경무관에게 부탁하고 이 부탁이 경찰청 본청으로 전달되길 바란거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메시지를 경찰청장에게 전하는게 박건찬 치안감의 임무였을까. 그의 노트에는 포스트잇이 2개 등장했다. 실장님이라는 메모 아래 관련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시 청와대 실장님은 김기춘 비서실장, 김장수 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등 세명이다. 포스트잇과 노트의 필체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경찰은 경찰청장의 중요한 정보원이라고 한다.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에서 별로 위상이 높지 않은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나간지 1년 반, 2년 안에 경찰청장이 된다. 비서고나으로 데리고 와줬기 때문에 초고속 승진을 해 경찰청장이 되는거다. 굳이 청와대 명령을 거역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경찰 조직에)행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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