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수련의가 시트를 끌어당겨 아내의 얼굴을 덮었다.> 김훈의 소설 ‘화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은 ‘아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죽은 아내의 몸은 뼈와 가죽뿐이었다.> 소설이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떤 배우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이 영화 ‘화장’ 속 김호정을 보고 잠시 무안해졌다. 김호정은 ‘아내’를 연기하는 게 아니가, 살아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워 보였다.Q. 커트 머리가 근사하게 잘 어울리세요.
1999년 충무로로 홀연히 날아든 김호정은 2001년 ‘나비’를 통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나비’를 추진력삼아 활발하게 스크린을 누비리라는 예상과 달리 김호정의 활동은 뜸했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 즈음 영화 ‘화장’에 출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의 연기에 노장 임권택 감독이 90도로 인사를 했다는 소문도. ‘화장’을 본 후 그녀가 출연한 ‘나비’를 다시 꺼내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비가 다시 날개 짓을 시작했구나.’
김호정: 어머, 그래요? 감사합니다. 머리를 기르려면 인내가 있어야 하잖아요?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아 지저분해졌을 때 참고 견뎌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최근엔 심경의 변화도 있고 해서 더 짧게 잘랐어요.
Q. ‘나비’(2001년)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카메라 앵글에 따라 얼굴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지세요.
김호정: 맞아요. 코도 크고 해서… 그런데 ‘나비’를 언제 봤어요? 그거 완전히 디프레스(Depress) 되는 영화인데. 으~(작은 탄성) 저는 이제 ‘나비’를 못 보겠어요. 볼 때마다 힘들더라고요. 찍은 후 우울증에 걸려서 한창 고생했어요.
Q.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화장’도 밝은 영화는 아니에요. ‘화장’을 찍은 후엔 어떠셨어요?
김호정: ‘나비’ 찍을 때만 해도 작품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다작을 못했죠. ‘화장’의 경우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고심한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랬기에 막상 슛이 들어갔을 때는 굉장히 담담하게 찍었고, 촬영 내내 이성적이었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빨리 벗어났어요. 그리곤 생각했죠. ‘내가 배우로서 뭔가 한 단계 성숙했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호정: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20-30대에 ‘배우는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하나의 인물을 온전히 만들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막상 나의 진짜 경험을 연기로 풀어낼 순간이 왔는데 그게 싫은 거예요. 실제 투병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기 싫었던 거죠. 이제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 연기를 하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났어요. ‘왜 하필 이런 역할을 나에게!’ 라는 생각을 해죠. 그래서 거절했는데 한 달 뒤에 다시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원작 단편과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였죠. ‘배우로서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라고 느낀 게.
Q.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제안이 들어온 이유는 뭘까요.
김호정: 저도 궁금해요. 거장 감독님에게 그 이유를 직접 여쭤보는 것도 그렇고. 저 대신 물어봐 주세요.(웃음)
Q. (웃음) 원작과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빼앗긴 건가요.
김호정: 김훈 작가님 소설은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느낌들이 있는데 ‘화장’은 기존 작품과 뭔가 달랐어요. ‘와~’ 하면서 단숨에 읽었죠.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를 보니까, 또 임권택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하려고 하시는지가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욕실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내가 느끼는 복잡 미묘한 심경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면이겠구나’ 싶었죠. 그리고 자세히 설명은 안 됐지만, 아내가 글 쓰는 여자에요.
Q. 원작에서는 ‘잡지사 여기자’로 설정돼 있죠.
김호정: 맞아요. 그런 여자이니 커리어우먼으로서 얼마나 당당하고 자존감이 강했겠어요.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으며 무너졌겠죠. 굉장히 처절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Q. 아내가 표현해야 하는 감정들은 사실 많은 인간들이 피하고 싶은 감정들이에요. 열등감, 자괴감, 공포, 미안함… 어떤 감정이 가장 힘들던가요.
김호정: 그게 세 가지가 같이 가요. 저는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기 때문에 하나로 떼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죽음에 대한 공포도 공포지만, 무기력함에서 오는 공포도 상당해요. 그 자체가 공포인 거죠.

김호정: 듣고 보니 그렇네·. 정말 그들의 미래네~(웃음) 가만히 보면, 한국 영화가 남자배우 위주이기 때문에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너무 뻔해. 독특한 캐릭터의 여성은 얼마 없어요. ‘어머니’ 아니면 ‘아내’죠. 다양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많이 못 했어요.
Q. 안 그래도 ‘나비’를 보고 김호정이란 배우를 스크린에서 자주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어요.
김호정: 네. 출연작품이 몇 편 없어요. 영화 찍으면서 안성기 선배님에게 “선배님은 영화를 몇 편 하셨어요?”라고 물어봤더니, “글쎄 80편정도 했나?”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성인이 돼서 출연한 작품 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까 120개가 넘는 거예요. 필름이 소실된 것까지 하면 더 된다고 들었고요. 그걸 체감한 일화가 있는데, 제가 추위에 약해요. 그래서 “선배님, 연극은 실내에서 활동하니까 겨울이라도 괜찮은데, 영화는 추울 때 밖에서 어떻게 견뎌요?” 하고 물었더니, “내가 아기일 때는 말이지 깡통 속에다가~”를 시작으로 영화계를 풍미했던 80년대와, 중장년 역할을 오간 2000년대 세 단계로 나눠서 진화된 답변을 내놓으시더라고요. 정말 대단한 거죠.
Q. ‘나비’ 이후 작품을 많이 안 한 건, 후회 안 되세요?
김호정: 그땐 너무나 우울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제가 하고 싶은 역할들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죠. 출연한 저예산 영화들의 경우엔 또 교차 상영을 당하니까 거기에서 상처를 살짝 씩 받았어요.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됐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점점 멀어져 갔죠.
Q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 온 영화 현장은 어떠셨어요?
김호정: 시간은 꽤 지났지만 현장엔 금방 적응했어요. 오히려 정말 달라졌다고 느낀 건, 기자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거예요. 그렇게 많은 매체들이 앞뒤 내용을 다 잘라버리고 ‘노출’에 포커스를 맞춰서 빵빵 터뜨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Q. 말씀처럼 남편이 오물을 흘린 아내를 욕실에서 씻겨주는 장면은 전라노출로 인해 과도한 관심을 모으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세간에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화장’에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의도가 가장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김호정: 아쉽다고 해야 하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한번 호되게 당했는데도 적응이 안 돼요. 그때 지극히 개인적인 (투병) 사생활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실수로) 노출되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쏟아진 투병 기사에 정신을 못 차렸죠. 그래서 영화제 이후 대학원에 파묻혀서 숨어버렸어요.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이번 언론시사회 때는 ‘잘 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실제로 시사회 현장에서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휴대폰을 보는데, ‘노출’ 관련 단어들이 검색어를 장악해서 난리가 났더라고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집에 돌아온 후 화장도 못 지우고 한참 멍하니 있었어요. 이건 ‘슬프다’거나 ‘화 난다’ 수준을 떠나 정신이 붕괴되는 느낌이었어요. 큰 메시지가 담긴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노출’만이 영화의 다인 것 마냥 부각돼서 임권택 감독님과 안성기 선배는 물론 함께 한 모든 스태프들에게 죄송스러웠어요.

김호정: 수많은 매체들이 그랬다는 걸 탓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내가 신뢰했던 신문들도 그런 기사들을 똑같이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그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적어도 내가 좋아했던 신문은 객관적인 진실을 전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런 작은 거 하나가 큰 게 되는 거잖아요. 갑자기 큰 문제만 진실성 있게 다루겠어요? 상처는 그럴 때 받는 것 같아요. 믿었기 때문에 받는 거죠.
Q 문제의식과 함께 슬픔과 분노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인터뷰 때마다 기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데, 그건 기자들이 뭔가를 깨달았음 하는 바람인가요?
김호정: 아마, 망각해서 썼을 거예요. 매너리즘에 빠졌다거나. 그래서 설득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문제를 제기할 때, 조금이라도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거예요. 본인들이 하는 일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도 연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찬 물을 끼얹으면 정신이 들곤 했거든요.
Q. ‘화장’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응시하게 하는 영화예요.
김호정: 죽음에 대한 연극을 한 적이 있어요. 사라 케인이라고 영국 천재작가가 쓴 ‘새벽 4시 48분’이라는 작품이에요. 자살을 소재로 한 연극인데, 그 작품을 쓰고 사라 케인도 자살을 했어요. 28살의 나이에요. ‘새벽 4시 48분’을 하면서 이미 죽음에 대해 엄청난 생각들을 했었죠.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다는 걸 인지한 건 아버지의 죽음이었어요. 아버지가 2003년도에 돌아가셨어요.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지만 막상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내 문제로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삶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첫 번째 문제가 된 거에요. 너무나 힘들었어요.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그랬을 때 ‘화장’은 그런 문제를 굉장히 담백하고 통찰력 있게 보여주는 영화예요.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생각하게 하죠.
Q. 삶의 일부임에도 죽음은…죽음은 두려운 것 같아요.
김호정: 맞아요.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도 두렵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떠난 다음에 남는 가족들인 것 같아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두려워요.
Q. 임권택이라는 거장을 만난 것도 의미 있지만 김훈이라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을 연기한 것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연극에서는 안톤 체홉 등 해외 유명 작가가 만든 인물들은 많이 연기하셨잖아요?
김호정: 그럼요. 이 영화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너무 많아요. ‘내가 왜 김훈 작가님 작품을 못 읽고 지나쳤지?’라고 생각해보니, ‘화장’이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해에 나온 소설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아마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아버님 죽음을 인정하기까지 3년이 걸렸거든요. 1년은 쇼크를 받아서 인정을 못했어요. 2년 째 되던 해 기일엔 촬영을 끝내고 찾아가서 동이 트기 전까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고요. 그러다가 3년째 되니까 인정이 되더라고요.

김호정: 아프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민감해지죠. 그러다보면 ‘고마워’ 하기보다 짜증을 내기도 해요.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푸는 거예요. 쿨 한 척은 하는데, 짜증을 내는. 미안한 감정은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미안한.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Q. ‘나비’는 잊고 싶은 기억을 골라 잊게 해주는 망각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에요. ‘망각’하고 싶은 기억이 있으시겠죠?
김호정: 그럼요, 있죠. 그런데 너무 힘든 기억은 본능적으로 망각하게 돼 있어요.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투병했던 시간이 이젠 잘 기억이 안 나요. ‘그 몇 년이 어떻게 지나갔지?’ 할 정도로. 망각한 거죠.
Q. 배우 이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김호정: 제가 지금 연극연출을 공부하고 있어요. ‘연기를 못 할 수도 있겠구나’ 느꼈을 때 연출을 생각한 건데, ‘화장’을 하면서 다시 신인의 마음을 찾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저는 배우에요.
Q. 배우의 어떤 면에 꽂히신 건가요?
김호정: 중학교 때 우연히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뮤지컬을 봤어요. ‘저게 뭐지? 나도 뮤지컬 배우가 될 수 있을까’ 하면서 동국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실제로 졸업 후 뮤지컬을 몇 편 했는데, 노래를 그렇게 잘 하진 못했어요. 그러던 중 독일 여행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는데 여배우가 “아~” 하고 기막힌 음성을 내뿜는 순간 ‘이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는구나’를 깨닫고 바로 뮤지컬을 포기했죠.(웃음) 그때부터 연극을 했어요. 98년도에 영화를 처음 찍었고요. 사실 연극에 만족을 했기에 영화에 큰 욕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꼴랑’ 세 작품 만에 너무 큰 상을 받은 거예요.
Q. ‘나비’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셨죠.
김호정: 네. 새로운 매체에 적응할 새 없이 큰 상을 받았는데, 거기에서 오는 혼돈이 있었어요. 백상예술대상(연극부문 최우수상 수상) 때도 자괴감이 느낀 기억이 있어요. 지하에서 몸이 썩도록 연극 연습을 하고 있는데, 방송사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드레스 입고 오라”고. 아니, 드레스가 어디 있어요. 후줄근하게 입고 연습하다가 갑자기 드레스를 입으려니, 내 직업과 정체성에 대한 혼돈이 오는 거예요. 아마 백상무대에 선 대부분의 연극배우들이 그런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백상에서 연극부분이 폐지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고요.

김호정: 그때는 여러 가지가 제게 너무 혹독했어요. 그런데 상처라는 게 영화 쪽에서 받는 건 아니에요.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칭찬도 받고 이름도 알려지니까, 그때부터 제 연기를 너무 쉽게들 평가하는 거예요.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도 어떻게든 단점으로 얘기하고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마침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방황의 시기가 꽤 오래 가게 된 거죠.
Q. 아버지의 죽음에 그토록 방황한 이유는…사랑을 넘어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김호정: 제가 연기하는 걸 아버지가 너무 싫어하셨어요. 예전엔 연기한다고 하면 다들 ‘딴따라’라고 했거든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무대에 올랐어요. 그 인정을 받을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러면서 목표를 상실한 거예요. 거기에서 우울증이 엄청나게 밀려오더라고요. 그래서 작품도 드문드문 하게 됐고…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된 것 같네요.
Q. 지금은 다시 목표를 찾은 건가요?
김호정: 일단 지금 저의 마음은 신인과 같아요. 굉장히 절실해요. 그리고 역할에 상관없이 굉장히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어요. 감사하면서요. 자신의 일에 감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결국은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상황이 안 좋았다기보다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걸 최근 몇 년간 깨달았어요.
Q.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하고 계시고, 9월엔 연극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자주 뵐 수 있을까요.
김호정: 저는 영화를 정말 많이 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누가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여자 이경영’이라고 했어요.(웃음) 그 배우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는데도 어쩜 나올 때마다 멋있고 다 신선할까요. 식상하지도 않고. 진짜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여자 이경영, 기대되네요. 진심으로.(웃음)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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