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의 여왕 김은숙의 저력 다시 한번 입증 “그녀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정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힐링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가슴을 안정시켜주는 음악을 듣고 풍경 좋은 산을 오른다 해도 그 감흥은 그 순간일 뿐. 현실은 언제나 쳇바퀴 돌 듯 돌아간다. 한 박자 쉬어가고 싶어도 수많은 현실적인 숙제들이 물밀 듯 몰려오고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고 싶어도 몰려드는 청구서에 간도 쓸개도 빼놓게 된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TV 드라마는 가장 안락한 휴양지다.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해오며 몸과 마음이 시든 중년의 노땅 연예기자인 나에게도 드라마는 일이라기보다는 삶의 활력을 찾아주는 가장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다. 최근 막장드라마의 홍수에 피로감을 느껴오던 나에게 요즘 몸 안에 죽었던 세포를 살려내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가 있다.
ADVERTISEMENT
그러나 난 오늘 고백한다. 요즘 사실 ‘상속자들’에 홀릭돼 있다. 드라마 본방 사수는 기본이고 틈틈이 게시판과 기사 검색에 시간을 보낸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여고생들을 보면 괜시리 은상(박신혜)이 생각날 정도다. 결말을 앞둔 현재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탄이와 은상의 해피엔딩을 기원하고 있다. 이성이 감성을 앞서야할 불혹에 왜 이럴까? 그건 아마 ‘상속자들’이 소년시절 잃어버린 감성을 되살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상속자들’ 제작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미드 ‘가십걸’의 아류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1~2회를 볼 때만 해도 재력과 권력의 맛에 젖어 있는 어른 같은 아이들의 모습은 ‘가십걸’의 짝퉁 같아 보여 반감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김은숙 작가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거부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대중이 드라마를 통해 느끼기 원하는 판타지의 극대치를 보여주는 필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분명 오글거리는 설정인데 사랑스럽고, 뻔한 갈등 국면인데도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분명 결론이 해피엔딩일 거라는 걸 알지만 다음회가 궁금해졌다.
ADVERTISEMENT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독보적인 캐릭터들 때문이다. 뻔해 보이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유쾌하게 비틀어대는 공력은 탄성을 자아낸다. ‘상속자들’의 탄(이민호)은 예상과 달리 단순한 백마 탄 왕자가 아니다. 소년과 ‘상남자’를 오가며 마성의 매력을 뿜어낸다. 아이 같이 칭얼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박력 있는 백허그로 여성 시청자들의 심장 박동수를 올린다. 은상도 만만치 않다. 외모는 답답한 가냘픈 소녀지만 헤어지라는 탄이 아버지 김회장(정동환)의 강요에도 할 말 다 한다. 감정에 솔직한 신데렐라 소녀의 모습은 묘한 전복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은상에게 대시할 때는 저돌적이지만 은상이 주는 밴드 하나에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소년이 되는 영도(김우빈)의 이중적인 매력도 여심을 뒤흔든다.
위기와 갈등이 있지만 항상 따뜻한 정서도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는 제대로 된 악역이 없다. 악역 캐릭터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을 부여한다. 은상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김회장도 탄의 약혼자 라헬(김지원)도 이사장(박준금)도 결코 밉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기에 시청자들도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ADVERTISEMENT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편집.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SBS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