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발표된 일련의 신곡들은 이와는 사뭇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후렴에서 또 다른 후렴으로 숨 가쁘게 내달리는 대신, 한동안 K-팝 씬의 일부 영역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축소됐던 전통적인 구성 요소인 '브릿지(Bridge)'를 전면에 내세우며 곡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보이그룹 앤더블(AND2BLE)의 '프렌치 키싱(French Kissing)'을 비롯해 에이투오 라이트(A2O LITE)의 '네온(NEON)', 엔믹스(NMIXX)의 '벌스데이 위시(Birthday Wish)'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 곡 모두 3분 안팎의 온전한 러닝타임을 확보하고 있으며, 후반부 클라이맥스로 진입하기 직전 멜로디의 극적인 전환과 보컬의 빌드업, 대비감을 선사하는 뚜렷한 브릿지 구간을 품고 있다.
특히 K-팝에서 브릿지는 폭발적인 고음과 겹겹이 쌓아 올린 화음, 긴 호흡의 애드리브, 파워풀한 인스트루멘털 브레이크다운 등 장르 특유의 보컬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마지막 후렴구를 단순한 반복이 아닌 곡 전체의 거대한 카타르시스로 탈바꿈시키며 리스너들로 하여금 브릿지 이후의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다.
반면 즉각적인 임팩트와 챌린지 중심의 바이럴에 최적화된 곡들은 종종 이 브릿지 구간을 생략한 채 곧바로 후렴으로 직행하거나 훅을 단순 반복하며 러닝타임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 왔다. 짧은 곡 자체가 음악적 결함은 아니며, 빠른 호흡 역시 그 자체로 강력한 전달력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도파민성 킬링 파트'만을 강조하는 작법이 지속되면서, 무한 재생에 밀려 음악적 서사와 입체감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강력한 후렴구가 곡을 단숨에 각인시킬 수는 있지만, 탄탄하게 설계된 브릿지는 그 후렴구가 귀에 닿을 때의 감정적 울림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신인 걸그룹 에이투오 라이트의 데뷔곡 'NEON' 역시 3분 28초라는 넉넉한 러닝타임 속에서 확장된 구조의 묘미를 살려냈다. 곡의 각 파트가 고유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호흡을 부여하며, 후반부에 잘 정돈된 브릿지와 보컬 톤의 완급 조절을 배치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이 브릿지는 라이브 무대에서도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음악방송 앙코르 무대 영상이 바이럴을 타는 과정에서 멤버 라다가 브릿지의 고난도 고음을 점차 노련하고 자신감 넘치게 소화해 내는 성장 서사가 포착되며 음악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엔믹스의 'Birthday Wish' 또한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탄탄한 보컬 역량과 과감한 음악적 구조 실험으로 정평이 난 엔믹스는 이번 곡에서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미니멀하게 덜어낸 브릿지 구간을 활용해 앞뒤 파트와 극적인 대비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섬세하게 축적된 감정선은 곡의 엔딩 구간에 한층 묵직하고 깊은 서정성을 부여한다.
또한 보컬리스트들에게는 짧고 단순한 구성에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역량과 테크닉을 온전히 펼쳐 보일 수 있는 귀중한 무대가 되어준다. 정교한 브릿지가 받쳐줄 때 하이라이트의 고음은 비로소 당위성을 얻고, 풍성한 화음과 애드리브는 익숙한 멜로디에 입체적인 깊이를 불어넣는다.
세 곡 모두 3분 안팎의 러닝타임을 지녔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과거에는 대중가요 싱글의 지극히 보편적인 길이였으나, 2분 안팎으로 압축된 초단기 음원들이 쏟아지는 현시점에서는 3분을 꽉 채운 서사적 곡 구성 자체가 오히려 신선한 차별점으로 다가온다. 물론 단순히 곡의 길이만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4분짜리 곡이라도 무의미한 반복으로 채워질 수 있고, 2분짜리 곡이라도 밀도 높은 전개를 보여줄 수 있다. 핵심은 프로듀서가 곡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발전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킬링 파트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유의미한 음악적 요소들을 과도하게 쳐내고 있는가에 있다.
그럼에도 'French Kissing', 'NEON', 'Birthday Wish'가 입증한 것은 즉각적인 대중성과 탄탄한 곡 구조가 결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입부에서 서사를 쌓고, 브릿지에서 예상치 못한 전환을 주며, 마지막 후렴구에서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완성하는 '음악적 여정'은 리스너들을 첫 30초 이후에도 곡 끝까지 붙잡아 두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스트리밍과 숏폼 시대 속에서 정교하게 설계된 브릿지의 귀환은 K-팝의 다음 방향성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K-팝이 남겨야 할 다음 결정적 순간은 단순히 SNS 챌린지를 겨냥한 중독적인 후렴 한 줄이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곡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찾아 듣게 만드는 시원한 고음, 예기치 못한 전조,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틱한 변주일지도 모른다. 후렴구가 선사하는 최고의 희열은 종종 그 직전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든 여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Guzman Gonzalez Hannah 텐아시아 기자 hannahglez@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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