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빈 감독이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를 연출했다. / 사진제공=티빙
윤영빈 감독이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를 연출했다. / 사진제공=티빙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 흥행에 성공한 윤영빈 감독이 오히려 작품이 실패했다고 여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매 작품 처음과 같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소신이다. 주연 배우 이준혁을 향해서는 어떤 역할에서도 튀지 않는 안정적인 연기가 강점이라며 깊은 신뢰를 내비쳤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이하 '로또 1등') 윤영빈 감독과 만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로또 1등'은 위아래로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팀장 공은태(이준혁 분)가 로또 1등에 당첨된 뒤, 사직서 대신 당첨금 13억원을 품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는 K-직장인 오피스 드라마다.

윤 감독은 영화 '불신지옥'의 스크립터와 현장 편집 업무를 맡았으며, 영화 '강릉'을 연출했다. 드라마 연출은 '로또 1등'이 처음이다. 첫 드라마부터 흥행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윤 감독은 오히려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윤 감독은 "개인적인 지론 중 하나인데, 드라마가 망했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하다 보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 싶다. 사람이 가장 망가지기 쉬운 순간이 '이제 좀 알았으니 다음에는 이렇게 해봐야지'라고 마음먹을 때"라며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도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작업하려 한다"고 털어놓았다.
윤영빈 감독이 이준혁을 캐스팅한 건 "무슨 역할을 하든 튀지 않고 딱 적합하게 연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티빙
윤영빈 감독이 이준혁을 캐스팅한 건 "무슨 역할을 하든 튀지 않고 딱 적합하게 연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티빙
작품의 출발점에는 '13억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극 중 공은태는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평범한 직장인이다. 로또 1등에 당첨돼 13억원을 손에 쥔 뒤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생계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자 이전과 달리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한다. 갈등을 빚던 동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불합리한 상황에도 맞서는 등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직장 생활을 이어간다.

윤 감독은 "실제로 13억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은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으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지 않나.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했던 경험이 있다"며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생업에서는 은퇴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한 일에서 벗어난 사람이 회사원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며 "돈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지 않나.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한 장면. 주인공은 로또 당첨 후에도 회사에 성실히 출근한 모습이다. / 사진제공=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한 장면. 주인공은 로또 당첨 후에도 회사에 성실히 출근한 모습이다. / 사진제공=티빙
이러한 공은태를 연기할 배우로 이준혁을 선택한 이유도 밝혔다. 윤 감독은 "이준혁 배우는 무슨 역할을 하든 튀지 않고 딱 적합하게 연기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영화 '신과함께'나 '범죄도시'를 봐도 어느 장면에서든 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드라마는 주연 배우가 중심을 잡아줘야 주변 인물들이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안정감과 역할에 적합한 연기를 해내는 능력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원작 소설을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인물들의 서사를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윤 감독은 "선과 악이 부딪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선과 선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에서 압축적으로 다뤄진 인물들의 서사를 보충하기 위해 에필로그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은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에필로그가 인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윤영빈 감독이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를 연출했다. / 사진제공=티빙
윤영빈 감독이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를 연출했다. / 사진제공=티빙
윤 감독이 연출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는 "연출은 결국 배우가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세팅하는 일"이라며 "배우가 어떤 연기를 준비해 왔는지 충분히 관찰한 뒤 어색한 부분은 제거하고 좋은 부분은 살리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리허설을 많이 하면서 배우들이 준비해 온 연기를 조율하는 편이다. 자신이 준비한 것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배우들도 더 즐겁게 연기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우 중심의 이러한 연출 방식은 감독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는 "감독은 작품이 나빠지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본에 담긴 이상향이 있어도 촬영 현장에서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다"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결국 작품을 더 좋게 만드는 건 배우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친 윤 감독은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도 밝혔다. 그는 "공포를 제외한 장르는 모두 더 잘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공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전쟁 영화를 꼭 한번 연출해 보고 싶다. 현재 구상 중인 전쟁 영화가 있고 역사물도 준비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소정 텐아시아 기자 forusoju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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