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기획한 5인조 걸그룹 AI-DOL. / 사진제공=LG전자
LG전자가 기획한 5인조 걸그룹 AI-DOL. / 사진제공=LG전자
기업 광고에 아이돌이 등장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인기 아이돌이 제품을 들고 광고하거나 광고 음악을 부르는 일도 흔하다. LG전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세탁기를 홍보하기 위해 아예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다. K팝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신선한 마케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K팝 팬들의 반응은 오히려 마케팅 실패 사례로 기록되는 모양새다. K팝을 대놓고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LG전자는 최근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를 홍보하기 위해 5인조 그룹 '에이아이돌(AI-DOL)'을 기획했다. 이름에 AI가 들어가지만 가상 아이돌이 아니다. 이연, 모아, 성현, 희재, 수아 등 실제 인물 5명이 멤버로 참여했다.

등장 과정은 실제 신인 아이돌과 닮았다. LG전자는 강남역과 삼성역, 광화문, 남대문, 명동 등 서울 주요 지역 디지털 스크린과 SNS를 통해 멤버들의 모습을 먼저 공개했다. 신곡과 뮤직비디오는 물론 콘셉트 포토와 안무 영상, SNS 콘텐츠까지 준비했다. 처음부터 가전제품 광고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신인 아이돌을 알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관심을 끈 뒤 지난달 28일 AI-DOL의 정체를 공개했다.
아이돌이 세탁기 기능 됐다...LG전자 'AI-DOL', 불편한 K팝 마케팅
여기서 제품 홍보에 활용된 것은 단순히 아이돌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돌이 등장한다'는 상황 자체가 콘텐츠가 됐다. 멤버를 공개하고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 뒤 음악과 안무를 선보이는 과정까지 신인 그룹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방식을 가져왔다.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아이돌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것을 넘어 신인 그룹의 데뷔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심까지 마케팅의 일부로 활용한 셈이다.

그룹의 구성 역시 제품과 떼어놓기 어렵다. AI-DOL의 다섯 멤버는 각각 AI 워시콤보의 주요 기능을 상징한다. 올인원 대용량부터 AI 시간감지, AI 세탁·건조, 플랫 디자인, 미니워시까지 제품의 특징을 멤버별 캐릭터에 하나씩 입혔다. 멤버가 자신의 음악과 캐릭터를 통해 제품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품의 특징을 전달하기 위한 캐릭터로 설계됐다.

아이돌 산업 역시 상업성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기획사는 시장을 분석해 멤버를 구성하고 콘셉트와 음악을 기획하며 이를 하나의 IP로 성장시킨다. 기업이 아이돌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빌려 제품을 홍보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방식이다.

AI-DOL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아이돌은 음악과 활동을 위해 만들어지고 이후 확보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광고에 참여한다. AI-DOL은 광고할 제품과 기능이 먼저 정해진 뒤 이를 전달하기 위해 멤버와 음악, 콘셉트가 만들어졌다. 아이돌이 광고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광고가 아이돌의 형태를 갖춘 셈이다.
AI-DOL 멤버 모아가 JTBC 'R U Next?'에 출연했던 모습. / 사진=유튜브 캡처
AI-DOL 멤버 모아가 JTBC 'R U Next?'에 출연했던 모습. / 사진=유튜브 캡처
특히 멤버 모아의 이력은 AI-DOL의 성격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아는 2023년 하이브와 JTBC의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R U Next?'에 출연해 실제 걸그룹 데뷔에 도전했던 연습생이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데뷔 경쟁까지 거쳤던 인물이 이번에는 기업이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그룹의 멤버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물론 프로젝트 참여는 멤버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일반적인 아이돌 활동을 연상시키는 음악과 콘셉트, 프로모션까지 갖춘 그룹의 활동 기간이 제품 캠페인에 맞춰 정해져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LG전자가 밝힌 AI-DOL의 활동 기간은 오는 9월 말까지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실제 신인 그룹의 데뷔 과정을 충실하게 구현한 그룹이 약 두 달의 광고 캠페인과 함께 활동을 마치게 된다.

음악도 같은 구조 안에 있다. 지난달 30일 공개한 신곡의 제목은 'I WASH'다. 가사에는 제품명과 'wash and spin' 등 세탁과 관련된 표현이 등장한다. 음악이 그룹의 색깔을 구축하는 데 쓰이기보다 제품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또 하나의 광고 콘텐츠로 기능하는 셈이다.

홍보 방식은 최근 K팝 신곡 프로모션의 공식을 따랐다. 최예나와 안무가 효진초이 등이 'I WASH' 댄스 챌린지에 참여했다. 성과도 나타났다. LG전자에 따르면 'I WASH'는 인스타그램 인기 상승 오디오 1위에 올랐고 안무 영상은 릴스 인기 순위 4위를 기록했다. 젊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K팝 콘텐츠를 활용해 세탁기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겠다는 목적에서는 효과를 본 셈이다.
LG전자가 기획한 5인조 걸그룹 AI-DOL의 멤버 개인 사진에 이름 대신 세탁기 기능이 소개돼 있다. / 사진=@awc.ent 인스타그램 캡처
LG전자가 기획한 5인조 걸그룹 AI-DOL의 멤버 개인 사진에 이름 대신 세탁기 기능이 소개돼 있다. / 사진=@awc.ent 인스타그램 캡처
그렇기에 AI-DOL은 흥미로운 시도인 동시에 생각해볼 지점을 남긴다. 기존에는 이미 활동 중인 아이돌이 광고 모델이 됐다면, 이번에는 제품을 알리기 위해 아이돌 그룹 자체를 새로 만들었다. 멤버 구성부터 음악과 콘셉트, 티징, 뮤직비디오, 챌린지에 가상의 소속사까지 실제 신인 그룹의 데뷔 과정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제품 홍보에 활용됐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는 것은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다.

AI-DOL의 등장은 K팝의 영향력이 음악 산업을 넘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세탁기라는 제품을 알리기 위해 신곡과 안무는 물론 멤버 캐릭터와 데뷔 프로모션까지 활용할 만큼 K팝의 익숙한 문법은 이제 하나의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온라인에서 화제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LG전자의 시도는 분명 성공했다. 다만 이번에는 단순히 아이돌의 인기를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사람을 멤버로 세워 그룹이 만들어지고 데뷔하는 과정 자체를 광고에 활용했다. K팝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문화와 산업을 어디까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해 보인다. AI-DOL의 성공적인 바이럴 뒤에 남은 불편함이다.

윤예진 텐아시아 기자 cristyyo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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