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셰프가 공식석상에 참석했다./텐아시아 DB
정호영 셰프가 공식석상에 참석했다./텐아시아 DB
블라인드 심사는 참가자의 이름과 명성을 지우고 오로지 결과물로만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메뉴를 보는 순간 누가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이하 '스레파') 결승전이 블라인드 심사의 취지를 스스로 흐렸다. 정호영 셰프의 메뉴가 그 중심에 섰지만, 출연자 한 명만을 탓하기에는 제작진의 룰 관리가 아쉽다.
텐아시아 DB
텐아시아 DB
'스레파'는 현재 결승전을 진행 중이다. 최종 승자를 가리는 중요한 무대인 만큼 결승전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꾸려졌다. 총 3개의 식당이 경쟁하며 평가단은 식당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떤 셰프의 음식인지 알 수 없다. 식당 외부에 놓인 메뉴판의 사진과 설명만을 보고 입장할 수 있다. 출연자의 인지도나 기존 이미지가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일식 셰프인 정호영은 결승 메뉴로 우동을 선택했다. 우동 전문점 '카덴'을 운영하고 있는 정호영에게 우동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서바이벌에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메뉴를 택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오히려 결승까지 올라온 참가자라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을 꺼내는 것이 당연하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호영이 선보인 우동은 그가 실제 업장에서 판매하는 메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식기부터 면을 놓는 방식, 식재료 구성, 메뉴 사진과 디자인까지 업장에서 선보여온 모습과 상당히 흡사했다. 업장에서 사용하는 식기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기까지 했다.

결승이 시작되고 이를 바로 포착한 평가단도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모카세' 김미령 셰프는 메뉴를 살펴보며 카덴에서 판매하는 것과 동일한 메뉴가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다. 심사에 참여한 사람조차 정호영 셰프의 업장을 떠올렸다는 점은 이번 룰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호영은 이미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유명 셰프다. 그가 운영하는 업장 역시 여러 방송과 콘텐츠를 통해 알려졌다. 카덴의 우동은 정호영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가운데 하나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 업장에서 사용하던 식기와 익숙한 구성까지 그대로 등장한다면 이름표를 가린 것만으로 완전한 블라인드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카덴' 우동./SNS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카덴' 우동./SNS
다만 여기서 공정성에 대한 책임을 정호영 개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 참가자가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지는 자유지만 그 전략이 프로그램의 핵심 룰과 충돌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결국 제작진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레파'는 그동안 공정성을 강조해왔다. 블라인드가 필요한 라운드에서는 출연자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펜싱 마스크를 씌웠고, 재료비를 계산할 때는 100원 단위까지 따질 만큼 세밀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결승에서 생긴 허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제작진이 결승을 블라인드 심사로 설계했다면 단순히 셰프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수준에서 끝낼 일이 아니었다. 출연자의 대표 업장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식기와 플레이팅, 메뉴판 이미지 등도 사전에 점검했어야 했다.

블라인드 심사는 참가자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까지 최대한 제거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100원까지 계산하며 공정성을 챙겼던 '스레파'이기에 이번 결승의 빈틈은 더욱 뼈아프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블라인드라면, 굳이 블라인드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