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걸스데이는 나상천 대표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팀이었다. 팀이 인기를 얻고 정상 궤도에 올랐을 때 그는 삶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성취 이후 이별과 상실, 불안과 두려움이 차례로 그를 덮쳤다.
나상천 작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끝과 시작'이었다. 무너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른 길이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남겨질 딸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그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을 소설 '어느 멋진 도망'으로 옮겼다.
'어느 멋진 도망'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로저, 킴스, 도로시, 준상 등 네 인물을 통해 함께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라며 "결국 인생이라는 길은 나 혼자 걷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함께 걸을 때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상천 작가가 산티아고로 향한 것은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당시 그는 공황장애와 불면증, 당뇨까지 겹치며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자발적인 발걸음도 아니었다. 그는 "지인에 이끌려 거의 끌려가다시피 갔다"며 "처음에는 '가서 죽자'는 마음에 가까웠다"고 털어놨다.
순례길은 예상보다 더 고됐다. 나상천 작가는 33일 동안 하루 25~30km씩 걸었다. 몸의 고통만큼 힘들었던 건 마음의 압박이었다. 그는 "완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완주해야 할 것 같은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여정의 중반쯤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까지 알아보며 포기를 떠올렸다.
그를 다시 걷게 만든 건 우연히 만난 스페인 노인이었다. 노인은 그에게 순례길의 의미를 일깨워줬다. 나상천 작가는 "그분이 '이 길은 너를 위한 길이니까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걸어라. 걷다 보면 너를 만나게 될 것이고, 네 옆에 함께 걷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내가 아직 나를 만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나상천 작가가 가장 깊이 마주한 감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나 작가는 지난 2017년 아내와 어머니를 잇따라 떠나보냈고, 당시 딸은 7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내 죽음 자체가 두려웠던 건 아니다. 내가 죽고 난 뒤 남겨질 딸이 걱정됐다.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은 두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죽고, 언제 죽는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며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듯, 내가 없더라도 딸 곁에도 좋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됐다. 그 생각을 하자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 깨달음 이후 나상천 작가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공황장애와 불면증에서 벗어났고 정신과 약도 끊게 됐다"고 했다. 몸과 마음의 한계 끝에서 "이 고통을 넘어설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 그는 "예전에는 제가 만들어놓은 기준들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그 기준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그 기준 때문에 내가 힘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 더 유연해졌다"고 했다.
순례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나 작가는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워 하늘을 보던 순간, 마음속에 자막처럼 문장이 지나갔다. '용기 있게 살자, 지혜롭게 살자, 가치 있게 살자.'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이제 뮤지컬로 다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뮤지컬 제목은 '까밀란떼'다. 나상천 작가는 "음악은 대부분 만들어졌고, 올해 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중반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시연 연습 단계이며 이후 본 캐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조금 더 탄탄하게 준비해 관객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나 작가가 산티아고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침에 일어나 신발끈을 매고, 한 걸음씩 걷다 보면 결국 다음 목적지에 닿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걸으면 가는구나, 시작하면 도착하는구나를 몸으로 배웠다. 이제는 생각만 하지 않고 신발끈을 매듯 하나씩 실행하며 살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나상천 작가는 6월 초 다시 한번 800km 순례길의 산티아고로 향한다. 또 한 번의 '어느 멋진 도망'에 나선 그는 어떤 마음들을 마주하게 될까. 이전과 다른 감정들도 찾아오겠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인생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고. 함께 걷는 사람이 보일 때, 비로소 길은 삶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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