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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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 불렸던 배우 이순재가 지난 25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연예계는 큰 슬픔에 빠졌다. 영화, 드라마, 연극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평생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을 돌아봤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창 시절 취미로 즐기던 영화 감상을 통해 연기를 처음 접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출연작 '햄릿'을 본 뒤 배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고,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하며 연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5년에는 TBC 전속 탤런트 1기로 선발됐다.
1992년, 대발이 아저씨로 사랑받다
사진='사랑이 뭐길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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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조연을 오가며 존재감을 보였다. 영화 '밤은 말이 없다', '초연', '메밀꽃 필 무렵', '막차로 온 손님들', '단발머리', '기적'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1992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이순재의 대표작 중 하나다. 당시 '사랑이 뭐길래'는 시청률 65%를 기록하며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다. 이순재는 극 중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를 맡아 가부장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시청자들의 눈물과 공감을 끌어냈다.
사진제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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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이순재는 '사모곡', '인목대비', '독립문', '풍운', '허준', '상도', '이산'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이고 단단한 연기로 무게감을 더했다. 배우로 활동하며 그가 출연한 작품은 약 140편에 달하지만,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한 달에 30편 이상의 작품을 소화하기도 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맞은 전환점
사진='거침없이 하이킥' 캡처
사진='거침없이 하이킥' 캡처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이순재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뒤로하고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야동 순재' 캐릭터를 통해 전 연령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는 2013년 예능 '꽃보다 할배'에 출연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다.

연극에 대한 애착도 꾸준했다. 2016년 연극 '장수상회'를 통해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순재는 2017년 '앙리할아버지와 나', 2021년 '리어왕'에서 열연했다. 특히 '리어왕'에서 200분이 넘는 대사를 완벽히 소화하며 박수받았다. 그는 2022년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으며 창작자로서의 활동도 이어갔다.
사진제공=아크컴퍼니, VAST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아크컴퍼니, VAST엔터테인먼트
마지막까지 불타올랐던 연기 열정
이순재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공연 중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했다. KBS2 드라마 '개소리' 촬영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순재는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생애 첫 지상파 연기대상을 받으며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됐다.
사진제공=아이엠티브이
사진제공=아이엠티브이
이순재는 연기 외에 정치와 교육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1992년 그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당선됐고,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를 지냈다. 이후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교단에 서며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던 이순재. 그의 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비록 별은 졌지만 그의 발자취는 앞으로도 우리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정세윤 텐아시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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