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출연한 배우 손예진을 만났다.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제지회사에 근무한 만수(이병헌 분)가 갑작스레 해고당한 후 재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손예진은 남편 만수의 실직에 취미를 관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미리 역을 맡았다.
남편 현빈과 일 얘기는 거의 안 한다는 손예진. 하지만 이번 작품은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시나리오를 보여줬다고 한다.
손예진은 "처음 받은 시나리오와 디벨롭된 시나리오에서 미리 캐릭터나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 책을 닫고 서사가 강렬했다. 박찬욱 감독님이 주신 시나리오인데 처음에는 평온한 가족의 이야기라서 의심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돌아가셨나 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런데 역시나 (박찬욱 감독님다운 장면들이) 딱 나오면서 그림이 그려지더라. 모순적이기도 하고 비꼬는 듯도 하고 블랙 코미디 요소들이 있더라. 시나리오가 비극적 서사를 갖고 있는데 코미디적 요소도 있어서 묘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거 한번 봐봐' 그랬다"고 전했다.
이번 영화는 기존의 박찬욱 작품보다는 좀 더 분위기가 밝고 잔혹함이 덜 하다는 평가가 있다. 손예진은 "다크한 쪽을 보자면 잔인하거나 찝찝한 부분이 있긴 한데, 제 생각에 이번 영화는 박찬욱 감독님 표 인간극장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극 중 만수의 선택이 너무 극적이라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제가 맡은 미리 캐릭터가 가장 현실적이다. 그래서 제가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손예진이 영화를 한 건 7년 만이다. 그는 "영화를 오랜만에 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누구나 함께하고 싶은 박 감독님 작품을 하면서 베니스영화제도 처음 가봤다"고 말했다.
몇 년 새 결혼, 출산 등을 겪은 손예진은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두 번째 챕터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점에 박 감독님과 작업했고, 그것은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연기에 다시 열정이 생겼다. 감독님과 하면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연기를 바라봐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시나리오 볼 때와 또 다른 화면 속 대단한 배우들의 열연은 제게 좋은 자극이 됐다. 모든 것이 저한텐 긍정의 결과"라고 전했다.
손예진은 박 감독의 디테일한 디렉팅에 처음에는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은 한 대사 한 대사를 허투루 듣지 않는다. 대사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짚으면서 얘기해준다.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가진 말투가 있고 내가 준비해간 톤이 있기 때문에, '어미를 내려달라'고 해도 갑자기 내려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첫 촬영인 '장어신'에서는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패닉이 올 것 같았다"고. 이 신은 만수가 회사로부터 선물 받은 '비싼 장어'로 가족들과 바비큐를 해먹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장어 선물은 회사가 만수를 자르기 전 베푼 '마지막 호의'였다. 손예진은 "나는 장어가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장어에 힘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여덟 번, 열 번 테이크가 가는데, 나중에는 더워서 땀도 나고 식은땀도 나고 그러더라. '나 이제 큰일 났다. 어떡하지' 그랬다. '이렇게 디테일한 분인데, 나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중후반 넘어가면서 재밌어졌다. '좀 더 진절머리 내봐', '고개를 흔들면서 해봐' 같은 감독님의 팁들 덕에 더 자연스럽고 좋은 연기들이 나왔다.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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