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블리'라는 별명이 생기기 전에도 작품에 열심히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번만큼은 제 기여도가 티켓으로 반영되지 않을까 싶어요. 스스로 뿌듯함이 있어요. 하하하."

영화 '좀비딸' 개봉을 앞둔 윤경호는 최근 자신을 향해 부쩍 늘어난 대중의 사랑을 실감하며 이같이 너스레를 떨었다. 30일 개봉하는 '좀비딸'은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된 딸 수아(최유리 분)을 지키기 위해 극비 훈련에 돌입한 딸바보 아빠 정환(조정석 분)의 코믹 드라마. 윤경호는 정환의 고향 친구이자 약사 동배 역을 맡았다. 윤경호는 '좀비딸' 예매율 1위의 기록에 "조마조마하고 설렌다. 예매율을 보니 반응이 뜨겁다는 게 느껴져서다. 기쁘고도 조마조마하고, 조심하게 되기도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경호는 올해 초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에서 항문외과 의사 한유림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항블리', '유림핑', '쁘띠유림' 등 별명도 얻었다. 좋은 기운을 '좀비딸'로 이어가게 된 윤경호는 개봉 전부터 뜨거운 반응에 대해 "제 지분이 없진 않은 것 같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들뜨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언제까지 좋게 봐주실지, 언제까지 기대해주실지 싶어서다. 이러다 내가 실수하진 않을지 염려된다. 반면 기쁘기도 하다"고 했다.

윤경호는 동배를 연기하며 "주로 제지를 많이 당했다"는 의외의 사실을 밝혔다. 자신도 모르게 코미디라 웃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이를 알아차린 감독이 윤경호의 톤을 조절해준 것이었다. 윤경호는 "저도 조정석과 불꽃 튀는 연기를 해보려고 하면, 불꽃이 과했는지 감독님이 저를 좀 많이 눌러주셨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지향하는 코미디는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러니가 발생해서 웃음이 나는 코미디'라고, '웃기려는 애드리브나 과한 동작을 할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감독님은 자기 생각도 그렇다고 하셨죠. 그런데 하다 보니 제가 몸이 근질거렸나 봐요.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렸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제가 자꾸 뭘 하더라고요. 몹쓸 애드리브도 했죠. 감독님이 '경호 씨, 그거 안 하실게요' 하셨어요. 처음엔 웃었는데 반복되니 의기소침해지면서 주눅 들었죠. '나를 못 믿으시나', '내가 못마땅하시나' 생각도 했어요. 현장에서 저는 '안 하실게요'였어요. '하자'와 '안 하실게요', 그렇게 냉탕, 온탕 담금질이 됐죠. 어느 순간 내가 코미디 장르에 지나친 부담을 느끼고 있었구나 깨달았죠. 조정석, 이정은, 조여정 등 이들과 같이 있다는 상황에 제가 무언가 입증하고 싶었나 봐요. 감독님은 뚝심 있게 저를 눌러주셨고 저한테는 약이 됐죠."

이번 영화의 베스트신 중 하나는 윤경호의 토르 코스프레 장면이다. 극 중 동배는 정환, 수아 부녀와 놀이동산에 놀러 가며 토르 분장을 한다. 긴 금발에 근육질 몸매 코스프레가 윤경호와 잘 어울리는 데다, 윤경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코미디의 묘미를 더한다. 윤경호도 "나름대로 히든카드. 저만의 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처음 얘기가 나온 건 할리퀸이었는데, 문득 꼭 할리퀸이어야 하나 싶었어요. 동배가 코스프레할 인물로 할리퀸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지 타당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관객들에게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겠다 싶었죠. 감독님한테 얘기했다가 토르 얘기가 나왔어요.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인물 같고 동심의 연장선상 같기도 했어요. 제가 평소 못 가졌던 근육질 몸매를 가져볼 수도 있었고요. 하하. 관객들이 토르 코스프레는 재밌게 봐줄 수 있을 거 같았고 리스크가 적을 거 같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고퀄로 뽑아줄지는 몰랐어요. 분장헤어팀에서 영혼을 갈아서 비싼 가발을 맞춰주셨어요. 이게 시골 마을 은봉리에서 나올 수 있는 퀄리티인가 싶어서 의상에서라도 톤다운시키자고 했죠. 자세히 보면 신고 있는 신발은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장화입니다. 다들 금발, 근육질이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저도 색다른 경험을 했죠. 많이 좋아해 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번 영화는 부성애를 소재로 했다. 실제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아빠인 윤경호는 "늘 다 할 수 있는 아빠이고 싶다"고 했다.

"SNS에 감동적이고 뭉클한 아빠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 울컥울컥해요.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생각도 들죠. 멋지고 훌륭하고 자상한 아빠들을 보면 나도 그런 아빠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제가 늘 부족한 걸 느끼죠. 부족하지만 사랑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아빠이고 싶어요."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