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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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답게 시작부터 웅장했다.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있는 듯 지휘자가 먼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관객들에 인사했다. 2초 뒤, 웅장한 오프닝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 데에 성공하며 '귀르가즘'을 예열했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뮤지컬 '팬텀'은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오페라의 유령(Le Fantôme de l'Opéra)'(1910)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 책과 다양한 형식의 공연들로 우리가 많이 접한 스토리지만, 센스 있는 제작진들은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빠른 장면 전환으로 극 초반부터 식상함을 없애고 관객을 몰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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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팬텀은 극장 지하에서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극 특성상 어둡게만 구성될 수 있는 분위기에 제작진들은 몇몇 인물들의 대사에 유머 가득한 문구들을 넣어 관객들과의 친밀감 형성에까지 나섰다.

팬텀 역의 배우 카이는 특유의 중저음 톤으로 극의 전체 분위기는 물론, 자신이 맡은 인물에게 무게감을 줬다. 이 때문에 때때로 유머러스한 대사들이 오갈 때마다 올라가는 관객들의 입꼬리를 카이는 다시 끌어내렸다. 호흡 연기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아 팬텀이라는 인물이 현재 처한 상황과 감정에 진정성과 공감 그리고 생동감을 더했다. 팬텀의 아버지 역할 민영기는 최근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사실이 의심될 정도로 풍부한 성량과 무대 위 파워풀한 액션을 보였다.

배우들 뿐만 아니라 소품에도 정성이 뭍어났다. 지하를 밝히는 여러 촛불들과 극장 밖을 비추는 전등 그리고 거리의 어둠 속 달이 떠오르는 위치까지 세밀하게 조정하며 "공을 얼마나 들인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는 특수효과까지 활용해 "우리 이 제대로 갈았어"라는 티를 팍팍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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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많은 출연진이 각자의 대사를 할 땐 눈이 바빠져 피로가 유발된다는 점은 아쉬움을 낳았다. 1부가 끝나고 15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 뒤 시작된 2부에서 팬텀 아버지가 과거사를 읊는 장면이 너무 길다는 점도 '옥의 티'였다. 해당 장면에서는 실제 양 옆자리 관객들이 하품을 하거나 팔짱을 끼고 등을 뒤로 젖히기도 했다. 발레와 뮤지컬이 결합된 작품이기에 이런 점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일뿐더러 슬픈 사연이 담겨있는 장면이기에 보다 짧게 만들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존재감이 크지 않다. 수많은 장면과 음악 그리고 다양한 설정들 가운데, 아쉬움이라곤 이 두 가지 뿐이다. 오페라와 뮤지컬, 발레와 고난도 액션까지 결합해 10주년을 맞아 단 1%의 흠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관객들의 눈과 귀, 뇌와 심장 모두에 전달됐다. 한 관객은 "전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게 이번 10주년 공연의 목적이었다면 이를 제대로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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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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