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과 신민아의 모녀 케미
음식에 담긴 기억의 온도
음식에 담긴 기억의 온도

기억에도 온도(溫度)가 있을까. 진하디 진한 모녀의 뒤엉킨 서사를 다루는 '3일의 휴가'에는 유독 후후- 입김을 불어서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감독 모리 준이치)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은 평화롭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인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탁탁 내리치는 칼질과 보글보글 끓는 물,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다. 덜컹거리는 의자를 손수 못을 박아 고치고, 먼지가 한 움큼 쌓인 시골 백반집을 재정비하는 것은 누구일까.
미국 UCLA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던 진주(신민아)는 갑자기 모든 일을 중단하고, 3년 전 사망한 엄마 복자(김해숙)가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온 상태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주는 엄마가 운영하던 자그마한 백반집을 재개했다. 엄마 복자는 3일간의 휴가를 부여받고 진주를 보기 위해서 가이드를 따라나섰지만, 미국의 교수직을 버리고 백반집을 운영하는 진주의 모습에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귀신인 복자의 말이 진주에게 닿을 리는 만무하고, 만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녀 사이에 새겨진 세월의 무게를 반영한다. 우울감에 한없이 가라앉는 진주를 연기한 배우 신민아에게선 전작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진 민선아의 모습을 언뜻 비치기도 한다. 정신병원을 찾아간 진주는 의사에게 "잠을 못 자요. 깨면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요"라고 말한다. 끝내 매듭짓지 못했던 모녀의 이야기는 진주의 삶에 침범해 느닷없이 범람했던 것.

응답 없는 전화를 붙들고 무슨 뜻인지도 모를 진주의 컬러링을 듣고 있는 복자와 전화 알림을 못 본 척 무시하는 진주는 자꾸만 어긋난다. 지나온 과거는 노라 존스의 음악과 함께 현재까지 흐르는데, 현재의 버스 터미널에서 진주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를 듣고, 그 옆에는 귀신인 복자가 앉아 듣는다. 두 사람의 침묵을 대변하는 "I don't know why I didn't come"이라고 반복되며 후회하는 듯한 가사는 쓸쓸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음식에는 함께 먹었던 사람과의 기억이 담겨있듯이, 영화는 진주가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추억의 조각들이 펼쳐놓는다. 이는 과거의 기억 속 복자가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장면과 포개지기도 한다. 손수 만든 음식들을 진주의 월세방에 가져갔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복자는 그 길로 하염없이 걷다가 맥도날드에 당도한다. 눈물이 고인 복자가 주문한 메뉴는 햄버거가 아닌 그저 아이스크림콘. 손에 꽉 쥔 아이크림콘은 복자의 눈물을 대신하듯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진주는 시간이 지나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지 못했던 모녀에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며,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다. 더욱이 "지랄하고 있네"라며 거칠게 내뱉는 김해숙 특유의 말맛과 남겨진 자로서 지닌 후회와 회한을 담아낸 신민아의 깊이감, 김해숙을 안내하며 톰과 제리처럼 투닥거리는 가이드 강기영의 유쾌함, 속내를 털어놓고 싸울 수 있는 친구 미진 역 황보라의 편안함은 '3일의 휴가'가 지닌 소재적 한계를 보완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항상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을 놓치기도 한다"는 김해숙의 말처럼, '3일의 휴가'를 통해 내 옆에서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영화 '3일의 휴가' 12월 6일 개봉. 러닝타임 105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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