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데뷔 17년 만에 뜬 신기루
막말→학폭 위기 탈출 가능하나
'라디오스타' 신기루/ 사진=MBC 유튜브채널 캡처
'라디오스타' 신기루/ 사진=MBC 유튜브채널 캡처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나는 어차피 이 일을 하다가 사라지는 사람일 거다. 그래서 신기루다. 언젠가는 사라질 거고 사라지는 게 맞다."

개그우먼 신기루(본명 김현정)는 지난 8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서 자신의 활동명을 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언제 어떻게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연예계 생활을 두고 만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사라질 시기'가 데뷔 17년 만에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며 간신히 빛을 보기 시작한 현재는 아닐 테다. 그런데도 신기루를 둘러싼 논란이 연달아 터지자 그가 이름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을까란 우려가 나온다.

2005년 데뷔한 신기루는 KBS2 '폭소클럽',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 tvN '코미디 빅리그' 등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해 무명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지난 7월 웹예능 '터키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가 출연한 '터키즈 온 더 블럭' 에피소드는 조회수 600만뷰를 돌파할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영상에서 신기루는 이용진을 쥐락펴락하는 입담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성 연예인으로서는 금기시되는 전자담배 흡연을 고백하고, 수위 높은 19금 토크도 거침 없이 쏟아냈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새로운 예능 캐릭터 등장에 환호했고, 방송가에서는 신기루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MBC '놀면 뭐하니?', '라디오스타' 등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진출한 신기루는 자신만의 매력과 입담으로 대세 예능인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았던 신기루는 예상 밖의 암초를 만났다. 그는 지난달 24일 KBS Cool FM '박명수의 라디오쇼' 생방송에서 욕설과 음담패설을 쏟아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기루는 생방송 도중 "뒈질뻔 했다" 등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더니 "음식도 남자도 조금씩 다양하게 맛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리 웃음을 주기 위한 농담이었다고 한들, 도가 지나쳤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선배 개그맨 박명수도 "공영 방송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으나, 신기루는 "저한테 돼지, 뚱뚱하다, 무슨 무슨 X 하시는 분들은 괜찮다. 하지만 박명수 선배에게 버릇없게 행동한다는 오해는 말아달라"고 말해 그를 당황케 했다.

라디오 생방송에서 음담패설에 욕설까지 했으니 비판 여론이 형성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기루 입장에선 억울한 면도 있을 터.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한 이유는 거침 없으면서도 솔직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혼란스러울만 하다.
'라디오스타' 신기루/ 사진=MBC 유튜브채널 캡처
'라디오스타' 신기루/ 사진=MBC 유튜브채널 캡처
신기루는 '라디오스타'에서 이러한 고충에 대해 직접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요새 많이 혼란스럽다. 팟캐스트, 유튜브 이런 걸로 골수팬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놀면 뭐하니'에 나간 뒤 팔로워가 5000명이 빠졌다. 골수팬들은 나의 일상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좋아하셨는데 내가 공중파를 나가면 본인들이 좋아했던 내 모습이 안 나올까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공중파에 나오면 '너무 과하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신기루처럼 TV가 아닌 무대에서 먼저 주목 받기 시작한 예능인들의 대표적인 고민거리다. 이날 신기루는 부캐처럼 TV에서 쓰는 이름과 팟캐스트 등에서 쓰는 이름을 분리해 활동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교롭게도 신기루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절친 개그우먼 박나래도 아슬아슬한 19금 토크의 강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선 넘은 발언으로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후 그는 수위 높은 발언을 삼가는 진행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박나래는 강점이었던 무기가 자신을 향하게 되자 과감히 손에서 놓아버렸다.

'놀면 뭐하니'에 신기루와 함께 출연했던 이미주도 과거 한 웹 예능에서 시민을 인터뷰하는 도중 부적절한 19금 질문을 했다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현재는 예능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로 꼽히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가 tvN '식스센스', '놀면 뭐하니' 등에서 본연의 거침 없는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톤 조절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신기루 역시 지상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적정 수위를 파악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대신 현재 불거지고 있는 '학교폭력' 이슈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는 최근 자신에게 학폭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누리꾼이 등장하자 "전혀 사실무근이며, 일방적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의 입장만 각종 포털에 기사화되어 마치 내가 재판도 없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심정"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만일 학폭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는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신기루는 모처럼 예능판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구설에 자주 오르다보면 현재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가 꺼지기 십상이다. 신기루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잔상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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