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걸그룹, 오빠가 아닌 언니를 응원하다](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1080213522319557_1.jpg)
지난 7월 31일 SBS 에서 2NE1의 무대가 눈에 들어온 건 남규리의 일이 생각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Hate you’에서 형편없는 남자 친구에게 ‘언젠가 너도 너 같은 여잘 만나게 될 거야’라며 의자에 묶인 남자를 발로 밀어낸 그들은 ‘Ugly’에서 ‘난 예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라고 노래한다. 자학일 수도 있지만, ‘쳐다 보지마 지금 이 느낌이 싫어 난 / 어디론가 숨고 싶어’라는 가사는 괴로운 것이 외모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임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Ugly’로 인정하면서, 2NE1은 관점의 주체를 타인이 아닌 자신으로 바꿔 놓았다.
걸그룹이 스스로를 파는 새로운 방식
![[강명석의 100퍼센트] 걸그룹, 오빠가 아닌 언니를 응원하다](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1080213522319557_2.jpg)
‘내가 제일 잘 나가’와 ‘Ugly’가 대형 기획사를 통해 만들어지고, 음원시장 정상에 오르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걸그룹은 가장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재단되는 영역이다. ‘하의 실종’ 패션을 보여줄 때 가장 화제가 되는 것도, 동시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었을 때 논란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살이 쪘을 때 쪘다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걸그룹이다. 걸그룹이 치어리더나 마칭 밴드로 코스튬 플레이를 한 건 최근 몇 년간 걸그룹의 셀링 포인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걸그룹은 정해진 콘셉트를 소화하며 타인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줄 때 가치가 있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시장의 기조를 바꾼 소녀들
![[강명석의 100퍼센트] 걸그룹, 오빠가 아닌 언니를 응원하다](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1080213522319557_3.jpg)
시장의 변화는 ‘보핍보핍’에서 고양이 귀를 달고 엉덩이를 강조한 춤을 추던 티아라가 ‘롤리폴리’로 1980년대 소녀로 변신, 클럽에서 그들끼리 노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롤리폴리’에서 멤버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은 그들이 모델로 삼은 영화 가 가진 중요한 정서다. 영화에서 춤은 소녀들의 놀이이자 우정의 상징이다. 나미(심은경)는 춤을 추며 친구들과 친해졌고, 어른이 된 뒤에도 함께 춤을 추며 서로를 위로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나를 위해 즐겁게 추는 춤. 지난해 2NE1과 f(x)가 무대 위에서 즐겁게 노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시장의 변화를 예고했다면, 는 그 흐름의 상품성을 완전히 확인시켰고, 올해의 걸그룹은 보다 뚜렷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2NE1, f(x), 미스 A, 티아라의 신곡들이 모두 인기를 얻는 상황은 걸그룹 시장에서도 여성이 지지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걸그룹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걸그룹의 변화, 여자들의 변화
타인의 시선에서는 잘 나가는 연예인도 시구 한 번에 비호감이 될 수 있고, 아무리 예쁜 외모의 여자라도 틀에 벗어난 패션만으로도 입방아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에서는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노처녀’를 규정해 결혼 ‘못’하는 이유를 밝혀내려 하고, 언론에서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여성들에게 결혼하고 아이 낳을 것을 권하는 듯한 기사마저 나온다. ‘나’를 위해 시간을 쏟고, ‘나’를 위해 꾸밀 기회는 없다. SBS 에서 이연재(김선아)가 아버지 없는 가정을 혼자 꾸려 가느라 마음껏 살아본 적 없다며 한탄하는 것이 남 일 같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그 때 무대 위, 스크린 속의 소녀들은 자신들끼리 웃고 떠들고 춤춘다. 그건 평범한 그들의 또래에게나 이미 더 이상 ‘나’를 위해 살기 쉽지 않은 성인 여성들에게는 판타지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판타지는 살면서 좀처럼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많은 여성들에게 즐거운 휴식시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걸그룹이 노래하고 춤추는 순간만큼은 나를 위해 즐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가. 나는 예쁘지 않아. 하지만 제일 잘 나가.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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