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우리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아직 6월도 끝나지 않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6월까지 우리 앞에 벌어진 일들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를 쓰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총선 결과에 웃고 울었고, 총선 뒤에 벌어진 정치인들의 다툼에 상처 받았다. 그 사이 MBC는 파업 100일이 지났고, 은 그 날들만큼 방송을 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가 ‘멘탈 붕괴’인 것은 이런 모든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사람들의 멘탈은 애써 붕괴를 애써 막아야할 만큼 스트레스가 솟구친다. 그리고 그 사이 방영된 TV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은 프로그램 내외적으로 모두 이 정신없는 세상을 반영했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망가지거나, 어이없는 방송사고가 등장한다. 참신한 시도는 진부한 전개에 가로막혔고, 반대로 가장 뻔할 것 같았던 이야기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됐다. 가 이 복잡하고 답 없는 2012년의 세상과 TV에 대해 정리했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즐겁게 상반기를 결산하는 도 돌아왔다.KBS 의 이용배(이원종)가 말한다. “내 아들은 똑똑한데 수중에 돈이 없어” 죄를 지었다고. 그러자 아들 이장일(이준혁)이 말한다. “아버지가 내 인생 망쳤어.” 아버지는 풍요와 함께 아들을 평생 괴롭게 할 문제도 안겨줬다. 이장일은 아버지의 죄를 지고 살았고, MBC 의 이재하(이승기)와 MBC 의 이훤(김수현)은 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던 형을 이어 나라를 통치해야할 숙제를 안는다. SBS 에서 재벌 아버지를 둔 정재혁(이제훈)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KBS 처럼 첫사랑을 찬미하는 작품도 부모와 자식 세대의 갈등을 중심에 놓았다.
부모와 맞서거나, 부모와 다른 세계를 꿈꾸거나. 는 2012년의 상반기 드라마들이 왜 두 세대의 문제에 대해 다뤘는지 보여준다. 죄의 근원인 진노식(김영철)은 건설사업과 관련된 비리로 부를 일궜고, 그 돈으로 이용배의 아들이 검사가 되도록 지원했다. 개발시대의 재벌이 훗날 스폰서 검사를 만들었다. 세대의 문제는 곧 한국 현대사의 근원과 맞닿아 있고, 새로운 세대는 과거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 , SBS 등 젊은 왕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이다. 새로운 왕이 구태정치를 몰아내고 새 세상을 만든다. 이 기대는 한국의 현실과 맞물린다. MBC 사장만 되도 법인카드로 매년 수억 원의 돈을 쓸 수 있고, 인사 시스템을 바꿔 기자와 앵커를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물러나게 할 방법은 많지 않다. 국민은 누군가를 뽑을 자유는 얻었지만, 지도자의 독선을 막을 권력은 제대로 갖지 못했다. SBS 에서 재벌들의 싸움을 왕들의 전쟁으로 비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현실의 재벌은 이미 왕과 같고, 대중은 새로운 선한 왕이 등장하기를 원한다.
2012년의 드라마, 현재를 말하는 척 과거에 머무르다

새로운 소재에 전형적인 구성이라는 결과물은 디테일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에서 강영걸이 동대문 상인들과 연합해 회사를 키우는 과정은 모두 정재혁의 부하직원에 의해 설명된다. 의 진노식의 비서와 의 비서실장 역시 사업 현황이나 국제 정세를 모두 말해준다. 시청자는 강영걸이 드라마틱하게 회사를 일으키는 과정도, 에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른 국민이나 언론의 반응도 볼 수 없다. 디테일이 없으니 소재의 참신함과 메시지의 무게감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MBC (이하 )은 첫 회부터 돈이 제일의 가치가 된 한국사회를 풍자하고, 이야기의 중심에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는 젊은 의사와 10대 소녀를 배치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놀고, 식사하고 연애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10대 소녀가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결심을 할 때 겪게 될 현실적인 삶의 무게는 사라졌다. 가 갈수록 기존 시트콤처럼 캐릭터 위주의 코미디와 러브라인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다. 현재의 삶에 대한 구체성을 잃으면 과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래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래서 MBC 의 결방은 드라마나 예능은 물론 방송 산업 전체에 상징적인 사건이다. 의 불방은 올해 상반기 예능 프로그램의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Mnet 같은 뜨거운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KBS 의 ‘1박 2일’은 시즌 2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강호동과 김구라의 부재와 함께 토크쇼는 더욱 약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을 다시 불러낼 것인가. 아니면 김구라를 복귀시킬 것인가. 을 재개하면 재밌어할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 제작진이 원하는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김구라의 토크는 재미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잘못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현재에 머물 것인가, 고난을 각오하고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바랄 것인가. 또한 누군가의 죄에 대한 반성과 처벌을 할 것인가, 묻어두고 지나갈 것인가. 과거와 미래, 또는 진부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드라마도, 예능도, 그 프로그램들을 보는 우리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우리는 과연 이 과도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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