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옥탑방 시대의 사랑](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42412081430953_1.jpg)
신분상승을 꿈꾸는 악녀의 이야기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에서 지겹게 써먹었다. 하지만 는 홍세나가 아닌 박하의 캐릭터를 변주한다. 홍세나는 박하에게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박하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박하는 9세 이전의 기억을 잃었다. 그 기억에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 그 가족 중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이 포함 돼 있다. 기억을 잃은 박하는 고아원을 거쳐 미국에서 살면서 트라우마 없이 밝고 건강하게 살았다. 기억을 간직한 채 한국에서 살았던 홍세나는 악녀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부모는 가난하고, 자신은 짐을 덜기 위해 동생을 버렸다. 홍세나는 신분상승을 통해 자신의 돌아보고 싶지 않은 부모, 동생, 기억에서 벗어나려 한다. 박하는 기억을 일정부분 되찾으며 처음으로 홍세나에게 어둡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억을 되찾으면, 잊혀진 현실도 돌아온다.
그런 남자는 현실에 없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옥탑방 시대의 사랑](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42412081430953_2.jpg)
2002년의 의 남자 주인공 한기태(장혁)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재벌 2세였다. 차양순(장나라)이 그런 그를 도와 회사의 경영권을 되찾았다. 반면 이각은 몸에 밴 매너와 경제력, 여성의 조건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다. 한기태가 이각으로 바뀌는 10년 사이 SBS 은 재벌가의 아들과 평범한 여자의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줬고, MBC 는 신데렐라처럼 결혼한 여성 뒤에 있는 잔인한 현실을 드러냈다. SBS 으로 오면 재벌 2세가 아닌 재벌 3세 김주원(현빈)은 자신이 ‘사회 지도층’이며 길라임(하지원)처럼 평범한 여자는 ‘데리고 노는 것’조차 부끄럽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도 재벌가의 아들이 평범한 여자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는 아예 현실을 지우면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매너, 부, 선한 마음을 가진 완벽한 신사. 그런 남자만이 진심으로 여성을 사랑해줄 수 있고, 그런 남자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여행으로 현대에 온 조선의 왕세자이자 자신의 환생인 재벌 3세 행세를 하는 남자라는 구구절절한 설정이 붙어야할 만큼.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시대의 드라마
![[강명석의 100퍼센트] 옥탑방 시대의 사랑](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42412081430953_3.jpg)
그래서 이전에 MBC 과 영화 이 있었고, 같은 시기에 KBS 가 방영되는 것은 흥미로운 우연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잃어버린 첫사랑을 소재로,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다. 박하나 의 허연우(한가인)는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순수했다. 기억을 안은 채 살던 홍세나와 의 이훤은 고된 현실을 부딪쳐야 한다. 의 두 남녀는 첫사랑을 되새길수록 다시 만난 사랑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현실을 보게 된다. 은 되돌아온 기억과 함께 첫사랑이 돌아오고,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바꿨다. 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며 그 시절을 차분히 정리한다. 는 기억을 잃은, 또는 기억을 잃은 것처럼 행동하는 남녀가 만나 2000년대 트렌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로맨틱한 사랑을 보여준다. 오직 의 서인하(장근석/정진영)와 김윤희(윤아/이미숙)만이 첫사랑의 기억에 메여 있다. 그들의 모든 문제는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의 연장선상에 있고, 첫사랑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그들을 괴롭게 할 현실은 없다. 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대신, 과거를 그대로 현재에 재현하고, 이어간다. 그럼에도 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의 현실이 그렇게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의 작가가 로 돌아온 시대. 또는 첫사랑과 신데렐라 판타지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시청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시대. 착한 여자 박하처럼 현실을 잊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쁜 여자 홍세나처럼 현실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완벽한 어떤 사랑을 기다리며.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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