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팬이라면 2008년 연말은 ‘레전드’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 동방신기와 비는 해외에서 돌아왔고, 국내에는 각각 ‘거짓말’과 ‘Tell me’ 이후 폭풍의 한 가운데에 있던 빅뱅과 원더걸스가 있었다. 여기에 데뷔 초였던 2PM과 샤이니까지, 그들이 모두 모인 2008년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은 앞으로 이어질 아이돌의 시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여전히 빅뱅, 동방신기와 JYJ, 2PM, 샤이니, 그리고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다음이다. 이들이 모두 해외 활동을 병행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좀처럼 과거 그들만큼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아이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돌은 오락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부분의 아이돌에게 ‘춘궁기’라고 해도 좋을 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시절에 지상파와 케이블 TV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의 또 다른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MC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아이돌, 1%의 우상과 99%의 직장인](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21413385184657_1.jpg)
‘우상’의 빈 자리는 새로운 아이돌이 채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걸그룹들이 모인 의 시청률은 지난 주 5.1%(AGB닐슨기준)였다. 아이돌이 유기견을 돌보는 KBS 의 ‘가족의 탄생’은 4.3%다. 의 ‘불후의 명곡 2’도 처음에는 아이돌의 노래 경연을 내세웠지만, 어느새 다른 가수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KBS , 걸그룹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MBC 처럼 신생 아이돌 그룹도 출연하던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소녀시대와 2PM을 TV에서 쉽게 보던 시절, 예능 프로그램은 일정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로 관심을 모았다. 아이돌은 예능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반면 지금 TV에 남아있는 아이돌은 그만큼의 인기 그룹을 찾기 어렵다. 아이돌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도 점점 줄어든다. 인기 아이돌은 해외로 떠났는데, 남은 아이돌이 크게 성장할 방법은 딱히 없다.
점점 줄어드는 아이돌 시장의 규모
![[강명석의 100퍼센트] 아이돌, 1%의 우상과 99%의 직장인](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21413385184657_2.jpg)
한 산업이 불황에 빠지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아이돌 산업만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헤게모니를 쥘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불황은 한 산업 전체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아이돌이란 그 시대 매스미디어가 요구하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엔터테이너다. 음악산업이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 중심으로 넘어올 때 H.O.T.와 젝스키스가 탄생했다. g.o.d와 신화는 여기에 예능 프로그램이나 연기 활동을 더했다. 빅뱅은 10-20대가 따라할 수 있는 패션의 스타일까지 제시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이후 걸그룹들은 음악, 예능, 드라마 어디서든 대중에게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함을 갖췄다. 그러나 지난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화두는 Mnet 와 MBC 의 ‘나는 가수다’ 같은 리얼리티쇼였다. 리얼리티 쇼는 ‘진짜’를 요구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처럼 절박하든가,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처럼 미친듯이 열창해야 한다. 임재범의 굴곡진 인생도, 그 목소리도 아이돌의 트레이닝으로는 만들 수 없다. ‘불후의 명곡 2’가 ‘나는 가수다’처럼 성공하지 못한 이유다. 아이돌 산업은 그들의 방식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산업의 변화를 맞이한 셈이다. 그리고 SM-YG-JYP 엔터테인먼트는 SBS 의 ‘K팝 스타’에 참여했다.
리얼리티 쇼를 제작하면서, 세 회사는 그들의 회사 자체를 ‘진짜’로 만들었다. 출연자들이 회사의 트레이닝을 통해 성장하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심사를 맡은 3사의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능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3강’의 성공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K팝스타’를 통해 3사는 회사 자체가 캐릭터와 서사를 갖춘 존재가 됐고, 앞으로 데뷔할 소속 가수들은 자연스럽게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시장의 지배자인 그들은 다시 시장을 끌고 갈 동력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의 제작비는 엄청나고, 시청률을 확보하려면 지상파나 대형 케이블 채널이 관여해야 한다. ‘3강’이나 그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아니라면, 아예 이 판에 올라설 수 없다. 초창기의 아이돌은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기회가 생겼다. 그 뒤의 아이돌은 회사가 예능과 드라마에 ‘꽂아 넣을’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3강’만의 리얼리티 쇼가 만들어졌다. 또 한 가지 성장 방식인 해외진출도 그들이 가장 적극적이거나, 성공적이다. 특정 회사 중심의 시장구도는 점점 더 공고해지고, 아이돌은 회사와 팬덤의 규모에 따라 서열화된다. 일부 아이돌은 전 세계를 누비지만, 나머지는 연예계의 산업 예비군처럼 온갖 프로그램에서 ‘원샷’의 기회를 바라며 활동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양극화
![[강명석의 100퍼센트] 아이돌, 1%의 우상과 99%의 직장인](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2012021413385184657_3.jpg)
그래서 JYP가 제작하고 박진영이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나선 의 설정은 마치 ‘3강’의 수장이 본능적으로 바라본 가요계의 현재처럼 보인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기린예고를 이끈 원래의 이사장은 해외 진출에 나섰다. 그 사이 학교는 쇠퇴하고, “쓸만한 애들은 나가는” 상황이 된다. 결국 아이돌 기획사가 기린예고를 인수하고, ‘진정성’을 강조하는 유진(정진운)은 기린예고에 전학 온 아이돌과 대립한다. 아이돌은 학교로 돌아가고, ‘기본’과 ‘진정성’을 쫓던 로커는 자신의 신념을 유지한 채 아이돌의 세계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시장의 지배자들은 이미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을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아이돌과 제작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아이돌은 영원히 우상이 될 수 없다. 성장과 역전의 드라마가 없는 아이돌이란, 그저 어린 직장인일 뿐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위에 있지 않은 그 모든 아이돌에게 악전고투의 시절이 왔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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