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인공노할 짓에 피가 거꾸로 솟구칩니다

“얘기만 듣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들 말아요. 모자라서 그런단 말이에요. 모자라지, 그러면 그 가시내가 정상입니까?” 기소된 한 남자의 처가 한다는 소리가 가관입니다. 가수 소희도, 원더걸스도 알고 있고 엠블랙과 2PM을 좋아한다는 아이가, 사진 잘 안 나오니 찍지 말라며 얼굴을 가릴 줄 아는 아이가 설마 사람 구분을 못할까요? 오토바이를 태워서 데리고 갔다, ‘아줌마 밭에 갔다, 아줌마 없다’고 했다, 입을 막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차 뒷자리에 앉아 모자로 얼굴을 가리라고 했다, 이런 말들이 과연 다 꾸며낸 이야기겠어요? 큰아빠라는 사람이 데리고 갔던 모텔 방의 가구 배치며 컴퓨터가 있던 자리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누군가가 그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도 답답해 가슴을 칠 마당에 상처를 입은 가여운 딸아이의 고발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니, 부모 입장에서는 기구 절창할 일이죠. 피해 학생의 아버지는 가해자들의 집 앞을, 가게 앞을 지나며 1년간을 참고 또 참았다고 합니다. 자동차로 밀어버리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왜 아니 그러시겠어요. 무엇보다 객지 생활을 접고 내려와 누구보다 의지했던 형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가해자 가족들이 부디 부끄러움을 알기를

남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여자라면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한번쯤은 성추행을 당해본 경험이 있기 마련이에요.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요즘과는 비교 할 수 없게 미어터지는 만원 버스를 타야 했는데요. 통학 길, 사람으로 빼곡히 들어찬 버스 안에서 성추행이 참으로 빈번히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그 모욕감과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친구들에게는 털어 놓을 수 있을지언정 부모님에게는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죠. 아마 피해 여성들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지 싶어요.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성추행에 관한 한 아직까지 개화가 덜 된 모양입니다. 따라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부끄러워할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부터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에 하나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가해자 가족들이 부디 부끄러움을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피해를 당한 아이의 문제, 아이 집안의 문제로 돌리는가 하면 오히려 생사람 잡는다며 딸내미 간수나 잘하라며 자기 가족만 감싸고 든다고, 둘러댄다고 능사는 아니니까요. 마을 주민 모두가, 아니 어쩌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추악한 사태를 애써 덮어온 공범이라는 사실,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편집. 이지혜 seven@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