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명을 덮어쓰는 바람에 경합에 쓸 재료가 턱 없이 부족해진 탁구를 위해 미순(이영아)이와 재복(박용진)이가 십시일반이라며 이것저것 보태자 마준 군도 못이기는 척 부재료 몇 가지를 내놓더군요. 그걸 보고 미순이는 남의 마음을 얻는 재주를 가진 탁구(윤시윤)가 드디어 마준(주원) 군의 마음까지 움직였다고 짐작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순이가 마준 군과 탁구 사이에 얽힌 내막을 몰라서 하는 얘기죠. 둘 사이의 골이 얼마나 깊은데 그리 쉽게 마음이 열리겠습니까. 마준 군이 허울이 좋아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지 실은 누구보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걸, 남들이 알 리가 있나요.
할머니도 아버지도 정말 너무 했어요

그런데 그 호랑이 같은 할머니가 굴러들어온 돌인 탁구에게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시니 어린 마준 군 입장에서는 이해가 될 리 있나요. 게다가 냉정한 아버지조차 탁구에게는 웃음을 보이니 그보다 기막힐 노릇이 어디 있겠어요. 눈치는 예나 지금이나 없는 탁구가 자랑을 실컷 늘어놓던 게 기억나네요. 마준 군은 감히 범접도 못해본 아버지 작업실에서 빵 만드는 걸 구경하고 함께 빵을 먹었다고 자랑을 했었죠. 그럴 리가 없다며, 거짓말 말라며 다그치자 탁구는 “니 참말로 거기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나. 그라면 담 번에 내하고 같이 거기 드가 볼래?”하고 염장을 지르기까지 했잖아요. 그 순간 느꼈을 마준 군의 배신감, 백번 천 번 이해가 가고 남습니다. 게다가 탁구가 냄새만으로 빵 반죽의 숙성도를 아는 천재인 걸 알게 되자 아버지가 지었던 흡족한 미소라니. 마준 군으로서는 아마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준 군을 헤어 나오기 힘든 좌절감에 빠지게 한 건 자신이 아버지 구일중의 자식이 아니라 한승재(정성모) 실장의 자식이란 사실이겠지요. 어린 나이에 차마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탁구가 미워도 끝까지 대견하게 남아주세요

그러나 미워해야 마땅할 탁구이긴 해도 마준 군이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 또한 탁구라는 사실을 이젠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 엄청난 사건을 목도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때 괴로워하는 마준 군을 탁구가 다가와 도닥여주었던 거 기억나죠? “형이란 게 뭐꼬. 아우가 힘들 때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게 형 아이가”라고 하자 마준 군의 마음은 순간 흔들렸었죠. 그리고 얼마 전엔 코피를 쏟는 자신을 돌보는 탁구의 자상한 손길에 또 다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마 마준 군은 탁구에게 자꾸 의지하고 싶어지는 자신이 싫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마준 군이 망설임을 어서 떨쳐내고 탁구를 믿고 따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서인숙 여사와 생부 한승재 실장이 이끄는 길은 악의 구렁텅이겠지만 탁구와 함께 걷는 길은 그른 길이 아닌 옳은 길일 테니까요. 탁구가 마준 군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요? 탁구는 비록 마준 군이 자신을 속여 왔음을 알게 되었다 해도,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도 미워할 리 없어요. 탁구는 누굴 미워하지 못하는 애라는 거, 마준 군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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