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생김새를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동그란지, 코는 오똑한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나른하면서도 예민해 보이는 얼굴의 분위기가 묘하게 인상적인 차수연은 그런 부류다. 마치 물속에 있는 사람처럼, 보는 이에게 늘 일정한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녀의 존재감은 좀처럼 크게 변하지 않는 표정들과 나지막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덕분에 더욱 특별하게 다듬어 진다. 함부로 손을 뻗어 잡을 수 없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마치 유리벽 너머의 인어 같은 그녀의 매력은 흔하지 않아서 더욱 돋보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얼굴

그런 차수연이 그동안 어딘가 현실적이지 못한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왔다는 것은 분명 우연은 아닐 것이다. MBC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이국의 요부로 등장했던 그녀는 빅뱅의 ‘거짓말’ 뮤직비디오에서는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영화 <별빛 속으로>에서는 열아홉 살의 귀신이었다가, 영화 <아름답다>에서는 타고난 미모 때문에 미쳐버리는 극단적인 인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영화 <보트>에서는 펑크 록커 차림의 소녀였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그녀는 “작품을 선택할 때 마다 나름의 이유는 있어요. 어떤 역할은 내가 맡으면 참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고, 어떤 역할은 내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시험하는 계기가 되죠”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도 병 때문에 깊이 안아 줄 수 없는 혜림으로 출연한 영화 <오감도>는 그녀에게 첫 상업영화라는 의미가 있다. “절절한 멜로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보여주는 기회에요.” 천천히 바둑돌로 집을 짓듯, 그녀는 또 하나의 캐릭터에 자신의 가능성을 심어 준 것이다.

사실 <오감도>에 출연을 결정할 때만 해도 그녀는 이 작품의 외부적인 요소들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허진호 감독님이 하신다잖아요”라고 출연 계기를 요약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좋은 연출자를 통해 자신을 재평가 하고 싶은 갈증이 묻어난다. <오감도>의 다른 에피소드 중에 욕심나는 역할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소리 없이 웃기만 한다. 시나리오를 받은 순간부터 혜림이 되어 몸이 아프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고민하느라 실제 성격조차 조용해 졌다는 지난 몇 달이 결코 아깝지 않은 눈치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에 대한 욕심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올해 두 작품이 더 개봉할 거예요. <요가 학원>에서는 차갑고 도도한 모습을 보여주고, <집행자들>에서는 아마 밝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인물을 선보이게 될 거에요. 다양한 모습들을 시도하려고 노력 중이죠.”

“180도 어디에서 봐도 예쁜 여배우들과는 좀 다르게 생겼잖아요”

좀처럼 쉽게 가거나 대충 고르는 법이 없는 그녀의 고집은 타고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선택했던 십대 시절의 확신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연기로 옮겨갔고, 그 역시 탐탁찮았지만 부모님은 그저 말없이 그녀를 지켜봐 주었다. “제가 얼마나 고집이 센 줄 아시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여린 목소리에서는 상상도 못할 뚝심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스스로도 “180도 어디에서 봐도 예쁜 여배우들과는 좀 다르게 생겼잖아요. 서구적인 미인도 아니고. 저는 콤플렉스지만 그래서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라고 분석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녀는 아마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성공한 뒤에도 인디 영화에 대한 애정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마이너한 취향 역시 변치 않을 것 같다. 낯선 매력조차 잘 벼려낸 날선 여배우가 되어서 그녀는 어쩌면 두 다리가 없이 뭍에 오르는 최초의 인어가 되지 않을까.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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