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정도전’의 이성계(왼쪽)와 영화 ‘역린’의 정조
여말선초가 따로 없다. 전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세월호 침몰 참사는 국가 권력의 허망함을, 언론의 횡포를, 국민의 무기력함을 통감하게 했다. 비참한 현실을 바꿀 방법마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온라인상에는 이를 성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답답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는 대중의 심리는 문화의 영역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리 만무하지만, 그중 몇 작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얻고 있는 작품들 속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도 발견된다. 바로 하나같이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군주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도전’의 이성계, ‘역린’의 정조…포용력·이성적인 판단 능력 겸비한 인물로 그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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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은 ‘정도전’에서 이성계 역을 맡아 포용력 있는 군주상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도전’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는 ‘현실과의 접점’이다. 방송 초반 ‘정도전’의 집필을 맡은 정현민 작가가 방송작가로 데뷔 전 10여 년간 국회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현실 정치 참여 경험은 작품 속 날 선 대사로 이어졌고, 이에 ‘정도전’은 매회 주옥같은 대사들을 쏟아내며 순항 중이다. 작품이 인기를 끌며 극 중 유동근이 연기한 이성계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고려의 재건과 개국의 기로에서 고뇌하는 이성계는 포용력과 성품을 겸비한 인물로 그려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성계는 폭정을 일삼았던 우왕(박진우)과 대척점에 서며 이상적인 군주상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역린’도 ‘현빈’이라는 톱배우를 정조 역으로 내세우며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다. 사실 ‘역린’은 실제 역사를 그대로 옮긴 정통 사극이라기보다는 역사에서 모티프를 따온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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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은 ‘역린’에서 이성적인 판단력과 무력을 동시에 갖춘 정조 역을 맡았다.
일부는 역사 기록에 근거한 사실이기도 하나 ‘예기(禮記)’ 중 ‘중용(中庸)’의 23장을 줄줄 외는 모습이나 빼어난 활 솜씨까지 겸비한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인물로 정조가 그려지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작품에 현실상이 투영됐다는 사실은 방증한다. ‘역린’은 나라의 안위는 뒷전이고 붕당 정치가 극에 달한 난세를 평정할 인물로 ‘개혁 군주’로 평가받는 정조의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국가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하고 있는 셈이다.# 함경도 사투리부터 의외의 허당 기질까지, 작품 속에서만 가능한 ‘왕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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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에서 정재영은 상책 역을 맡아 정조 역의 현빈과 호흡을 맞췄다.
‘역린’은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풍자를 시도한다. 정조는 극 중 상책(정재영)과 묘한 케미를 자아낸다. 마치 ‘만담 콤비’처럼 차진 호흡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역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앞서 ‘광해’의 광해(이병헌)-허균(류승룡)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왕과 신하’는 그간 왕을 다룬 작품들에서 극의 재미를 위해 관행적으로 만들어온 인물 관계이기는 하지만, 이는 후에 ‘왕의 선택’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어느덧 풍자와 패러디가 사라진 대중문화계에 대중성과 메시지를 결합한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발생 이후 공권력과 국가 수장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일고 있는 시점에 ‘역린’ 속 정조와 ‘정도전’의 이성계가 주목받고 있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지만, 작품에 열광하는 이들의 뜨거운 반응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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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KBS,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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