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가 넘쳐나는 현재 우리 안방극장에서 메시지와 재미를 모두 갖춘 드라마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대중이 예전과 달리 드라마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거나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1차적 쾌감을 바탕으로 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탓에 드라마가 중량감은 가벼워지면서 수위는 세지고 있고 즉각적인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명작들은 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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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 작가의 팬이 아니라면 전작보다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도 사실 ‘세 번’ 결혼한 여자라는 제목에서 오는 뉘앙스 때문에 방송 첫 주는 본방 사수를 포기했었다. 사연 많은 여자가 전해줄 구슬픈 이야기가 왠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방송을 통해 드라마를 접하면서 철저한 오해였음을 깨닫게 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하는 김작가의 명불허전 필력과 열려 있는 세련된 사고와 젊은 감각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됐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두 여주인공 은수(이지아)와 현수(엄지원) 자매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라인은 멜로부터 로맨틱 코미디, 불륜극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전연령대 시청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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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는 사실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 보는 혁신적인 캐릭터다. 재혼을 하면서 딸 슬기를 친정에 맡긴 은수는 시집 눈치 보느라 아이를 챙기지도 못하면서도 아빠 집에서 살겠다는 딸을 막는다. 엄마의 무관심에 지쳐 있는 초등학생 1학년생 슬기가 “행복하냐”고 묻자 거침없이 “슬기가 나 싫어하는 거 빼고 어른들도 잘해줘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이기적이다. 나도 모르게 “저런 나쁜 X?”이라는 아유가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은수는 엄마보다 여자로서의 삶을 더욱 추구한다. 김작가는 재혼가정이 갈수록 늘어가는 현실에서 은수를 통해 ‘엄마보다 여자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꼭 욕먹을 짓인가’라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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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중반에도 다다르고 있는 현재 두 자매의 인생역정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두 번째 결혼도 위기에 더욱 치닫는 은수의 비극이 깊어지면서 ‘세 번’ 결혼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청자들 모두 알고 있지만 본인들만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모르는 현수와 광모가 언제야 속마음을 터놓을지도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김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뭘까?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감정에 좀더 솔직하자는 게 아닐까. 자신만의 행복이란 명제에 강박증을 지닌 은수의 모습은 자신의 감정이라기보다 욕심일 뿐이다. 현수는 솔직하지 못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큰 항해에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단면들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들을 응원하면서 현실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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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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