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 무모한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은 언제인가. 개봉은 지금이지만 무작정 유럽으로 떠난 지는 한참 된 것 같다.
이호재, 하승엽, 이현학, 김휘 등 대학 영화과에서 만난 이들 4인방은 자신을 스스로 ‘잉여’라 부르는 청춘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잉여’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 그대로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상제작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실패. 그렇다고 출중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니 장학금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가득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퇴짜다. 현실도 막막하지만, 미래는 더더욱 어두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무작정 떠나자고. ‘잉여대장’ 이호재를 필두로 하승엽, 이현학, 김휘 등은 무작정 유럽으로 향했다.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대학까지 자퇴했다. 대학 자퇴서는 이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출사표였다. 어찌 보면 현실도피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현실도피가 이들 ‘잉여 4인방’에겐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무작정 떠난 유럽에서 1년을 버텼다. 30여 편의 호스텔 홍보영상을 찍기도 했고, 여러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도 맡았다. “잉여도 하다 보니 되더라”는 게 대장 이호재의 말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이호재 감독 : 2009년 9월 출발했고, 이듬해 9월 프로젝트를 끝내고 귀국했다. 1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고, 그 후 6개월 후반 작업 비용 마련하기 위해 이런저런 영상 작업을 했다. 그리고 6개월 정도 편집 마무리를 하고, 올 초 가 편집본이 나왔다. 그걸 들고 배급사를 접촉하고, 지금 개봉하게 됐다. Q. 그럼 2009년 9월 출발하기 전 얼마나 준비를 했나.
이호재 감독 : 출발하기 2주 전쯤에 처음 이야기가 나왔다. 2주 동안 비행기 표 끊고, 카메라 2대 구입하고. 그게 전부였다.
Q.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막 간 거다.
이호재 감독 : 맞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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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 : 귀국하고 난 뒤 유럽에서 작업하던 영상작업을 이어서 하려고 모이긴 했다.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후반 작업 하려면 비용도 필요하고 해서 그걸 마련하고자 영상작업을 이어가고자 했던 건데. 1년 정도 작업실에서 놀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현학은 군대를 다녀왔고, 승엽은 다른 학교에 입학했고, 휘는 집안일 돕는다며 고향에 갔다. 그러다 보니….
Q. 애초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영화 개봉 계획까지 있었던 건가.
이호재 감독 : 계획이라기보다 상상만 하고 있었다. 물론 더 준비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작은 캠코더 하나만 가지고 갔던 거다.
Q. 그렇다면 언제쯤 개봉을 생각했던 건가.
이호재 감독 : 개봉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긴 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 상태였고. 그런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과정들이 생기게 됐다. 쉽게 말해 이런 거다. 일 년 동안 기록했고, 그걸 편집하면 영화가 나올 거고. 개봉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배급사 문의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가다 보니 지금 개봉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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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럽을 떠난 것도 그렇지만 개봉도 너무 ‘무대뽀’ 아닌가.
이호재 감독 : 그냥 그런 믿음이 있었다. 하면 되겠지 하는. (웃음)
Q. 영화에도 나오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중간에 그만두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나.
이호재 감독 : 한국에 돌아가자고 입 밖에 냈던 게 딱 한 번 있었다. 그나마 없던 여행경비가 2~3만 원 남았을 때다. 관두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버티기 힘든 순간이었다. 당시 누구라도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차마 말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나서 (한국에)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다 알았다고 하더라. (웃음). 딱 그때 운 좋게도 연락이 왔다. 사실 그것도 영상이 원해서가 아니라 우리 프로젝트 자체에 기특해하면서 자리를 제공해준 거다. 생각을 잘못했던 게 있는데 처음에는 호스텔 홍보영상이 아니라 한인 민박집을 할 생각이었다. 의사소통도 되고. 그런데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던 시기였던지라 방도 없고, 당연히 영상도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이때 재정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고, 호스텔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후 연락이 왔고, 그 뒤론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Q. 스스로 실력이 없다고 하더니 나중엔 호스텔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뮤직비디오도 하게 됐고. 실력이 없는데 이렇게 했다는 거, 조금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이호재 감독 : 유럽을 갈 때 영상을 만들어 갔다. 처음 7명이 출발했는데 그 영상이 우리 4명 말고 나머지 3명의 포트폴리오다. 우리는 한 10% 정도. (웃음) 나름 전문가의 손길이 들어간 영상인 셈이다. 그걸 보고 호스텔에서 연락이 온 거다. 어쨌든 그분들이 한국으로 간 상태에서 막상 만들려고 하니까 막막했다. 호스텔 영상을 만든 적도 없고, 호스텔에서도 딱히 요구하는 게 없었다. 근데 크게 작용한 것은 바깥 생활을 우리가 한 달 반 정도를 하다 집에 들어가니 모든 게 특별해 보였던 거다. 단지 방바닥에 뒹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했다. 호스텔이지만 당시 우리에겐 7성급 호텔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이 영상에 표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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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 : 귀국한 뒤로 호스텔에서 계속 연락이 왔다. 그러다가 영국의 한 호스텔에서 큰 제안을 했다. 승엽과 둘이 가서 만들고 왔다. 지금도 가끔 연락 오곤 한다.
Q.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실도피와 도전, 그 중간 지점에 있다. 그런데 자칫 현실도피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호재 감독 : 도전보다는 현실도피에 조금 가까운 것 같다. (웃음) 학교 다닐 때 실제로도 이 길을(영화를) 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다. 영화 하기에는 재능이 부족한 것 같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다 못할 것 같았다.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단편영화 만들어서 수상도 해야만 하고. 우리(잉여 4인방) 같은 경우엔 시나리오를 가져가도 안 된다는 말만 들었고, 제작 기회도 없었다. 이걸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나왔다.
Q. 참, 아이러니하게도 현실도피로 생각한 이 아이디어가 결과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게 됐다.
이호재 감독 : 뭐랄까. 현실 도피성 환상이 막연하게 있었다. 호스텔 영상을 만들면서 여행을 함과 동시에 이 작업을 이어가면 포트폴리오도 되고, 공부도 될 거란 생각이 있었다. 뮤직비디오도 있고.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면 장편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굵직한 선은 가지고 있긴 했다. 특히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이 프로젝트는 즐거울 것만 같았다. 그런 환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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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 : 자랑스러워한다. 초반 과정을 알고 있고,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니까. 그걸 버티고, 이겨내고, 끝까지 해냈다는 것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Q. 자료를 보니 호스텔 홍보영상을 많이 찍은 것으로 나온다. 근데 이번 영화에는 그 부분을 거의 넣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호재 감독 : 편집할 때 도전기나 성공기로 비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호스텔 영상도 최대한 넣지 않았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일하게 된 건데 그걸 앞세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출발 당시 평범한 청년이었고, 그중에서도 조금 모자란 아이들이었다.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Q.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잃은 것도 있을 테고, 부족한 것도 있었을 것 같다.
이호재 감독 : 잃은 건 없는 것 같다. 원래 가진 게 없어서 잃어버릴 것도 없었다. (웃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 보면 대충했다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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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 : 만약 시작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분명 누구나 자기만의 색깔, 특색이 있는 건데 그걸 만들어낼 시간 자체가 없었을 것 같다. 오래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계속 버텼다면 더 많이 자책했을 것 같다. 유럽에 가니까 필요로 하는 데도 있다는 걸 느꼈다.
Q. 이런저런 영상을 많이 찍고, 연출 데뷔도 한 상황이다. 영화 쪽에서 제의도 있을 것 같은데.
이호재 감독 : 아직은 없다. (웃음).
Q. 국제통상을 전공하다 다시 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학교를 자퇴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학교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없나.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이호재 감독 : 학교… 가고 싶기도 하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서 학교는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생각 없다. 또 다른 게 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웃음). 다시 노크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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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 : 어릴 때였지만 자주 들락거리던 극장이었다. 영사기사 구한다는 소식 듣고, ‘하면 안 돼요’라고 무작정 물었더니 흔쾌히 받아줬다. 부산에서 대학교 다닐 때인데 1년 6개월 가량 영사기사로 일했다. 그때가 스물두살이었다.
Q. 원래 영화를 하고 싶어 다시 영화과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는가.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영화 연출을 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물론 혼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호재 감독 : 대학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다시 들어간 거다. 지금은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그런데 다들 그러겠지만 하고 싶은 게 직업이 되는 순간 많이 힘들어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면 계속 억지로 뭔가를 하게 되는 거다. 그보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애를 쓸 것 같다.
Q. 두 번째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는데 어느 정도 구체화했나.
이호재 감독 : 예술분야가 아니더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더 충원해서 세계여행을 할 계획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말이다. 문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지역이 있다면 그런 곳에서 문화 교류를 하면서 유랑을 할 생각이다.
Q. 처음만큼의 열정이 나올까도 싶다. 그리고 이번엔 호스텔 영상 물물교환 방식이었다면 두 번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호재 감독 : 아직 잘 모르겠다. 처음과 마찬가지다. 책임져야 할 인원이 좀 늘었을 뿐이지 달라질 건 없다. (웃음) 하나 있다면, 버스 등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싶다. 어디 가서 생존할 수 있는 걸 조금은 갖추고,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배웠던 게 있으니까.
Q. 멤버 변경의 가능성도 있는 건가.
이호재 감독 : 그것 또한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멤버로 갈 수도 있고, 중간에 바뀔 수도 있는 거다.
Q. 지금까지 이야기를 해보니 굉장히 긍정적이다. 이 프로젝트가 뭔가 긍정적 에너지를 심어준 것 같다.
이호재 감독 : 학교 다닐 때는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긍정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교 대안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완전 새로운 거였다. ‘아, 하면 되는구나.’를 깨달았고, 뭘 하든 뒷일을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이번에도 개봉까지 의심한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하다 보면 될 수 있는 거고, 설령 안 되더라도 손해 볼 건 없으니까.
Q. 그런데 만약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고, 가정을 꾸린다면. 그때도 뒷일 생각하지 않고, 지금 같은 도전이 가능할까.
이호재 감독 : 그에 맞는 환경에 맞춰 입혀갈 것 같다. 가정을 꾸릴 방법도 여러 가지니까. 지금도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를 이렇게 이어왔듯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방법이 있을 거라 본다. 즐겁고 행복한 쪽으로 선택해 나갈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자신을 아직도 잉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호재 감독 :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단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다. 싫은 건 안 하는 편이다. 그 때문에 또 다른 잉여의 버전인 것 같다. 지금은 해야 하는 것조차 없다. (웃음).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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